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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복지와 동물권리/Life Giving Choices
동보연 2011-12-30 21:38:03

(다음은 ‘Life Giving Choices’ 라는 앨 파소의 채식주의자 연합의 공보에 실린 글입니다.)

동물복지와 동물권리

인류가 동물의 고통에 관심을 기울여오는 동안 인류는 동물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서 노력했으며 동물복지철학은 우리 문화의 한 부분이 되어오고 있다.

이러한 관심들은 동물을 향한 부분적이고 얼마간이 무관심한 서양의 전통과 고대 동양의 종교의 윤리적 핵심들과 뒤섞인다.

동물권리라는 개념은 처음으로 인권이라는 개념이 자리잡았던 17세기 전에는 등장하지 못했다. 그리고 20세기까지는 철학적으로 논의될만한 중심과제가 되질 못했다.

동물복지와 동물권리의 입장들은 모두 동물을 향한 인간의 잔인성과 동물에게 가해지는 불필요한 고통을 비판하면서도 동물들이 지니는 도덕적 지위를 놓고 첨예하게 대립한다.

랏처스 대학의 동물권리법의 권위자이며 동물권리입문의 저자인 게리 프랜시온은 복지와 권리라는 철학들 사이에서 그 차이점에 대한 적절한 토론을 제안한다.

프랜시온의 말을 빌리면 동물복지론자들은 동물들도 이익을 지니고 있음을 인정하지만 만일 인간의 이익이 위태로울 만큼 동물들에게 과도하다 할 정도의 이익이 부여된다면 동물들은 희생되거나 교환처분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유별난 복지론자들에 의하면 동물들의 이익은 너무나 많은 이유들로 인해 짓밟히며 육류소비와 생체해부를 위해 또는 서커스, 로데오, 투우, 투계 그 밖의 인간들의 오락을 위해 제한된다고 한다.

복지론자들은 동물들이 불필요한 고통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동물들에게 가해지는 행위는 어떠한 형태든지 간에 인간적으로 행해져야 한다고 믿는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동물권리론자들은, 보다 큰 효용성과 중대성을 위해서라면 동물들의 희생을 허용한다는 동물복지론자들의 공리주의적 전제를 거부한다.

예를 들어 비록 의학적 지식에 있어서의 진보에서 볼 수 있는 훌륭하고 중대한 결과를 가져올수 있다 하더라도 권리론자들의 견해에 따른다면 동물들의 이익은 희생되어선 안된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그 ‘거대한 미덕’을 위해서 인간 개개인이 희생된다면 이는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고 믿듯이, 동물권리론자들은 마친가지로 동물들에게도 그들의 이론을 설득력있게 적용시킨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권리적 접근은 동물들을 (의식이 있고 감정이 있고 사고를 하는 인간들과 혼동하지 않으면서) 개체들로 취급한다는 점이다.

사실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형태의 착취로부터 동물을 해방시키고자 할 때, 재산으로 간주되는 동물들의 지위와 더불어 소유자들이 이에 대해서 행사하는 합법적인 권리가 가장 커다란 장벽으로 작용한다.

그러한 이유로 만일 내가 어떤 가학성 변태성욕자인 과학자의 실험실에서 동물들을 해방시킨다면 그 과학자가 아닌 내가 그의 ‘재산’을 ‘훔친’ 죄로 감옥에 가게 된다.

미국의 공장식 농장과 도살장에서 고통받고 죽어가는 100억의 동물들은 그들의 고통으로 이윤을 얻는 사악한 산업체들의 재산이므로 형용할 수 없는 잔혹행위들을 견딘다.

프랜시온 교수가 주장하듯 동물들의 삶에서 복지론에서 권리론으로의 이동과 함께 동물을 소유물로서 예속시키는 법적 장치의 폐지가 궁극적으로 동물들을 보호한다. (복지논쟁을 통해서) 비록 우리가 동물들의 이익에 대해 점차 관심과 애정을 키워간다 할지라도 인간의 소유권은 강력한 정당성 없이는 폐지되지 않는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동물들이 소유자들의 재산으로 간주되고 있는한, 고유의 이익을 지닌 공급품으로 간주될 수 있는 동물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예를 들어 비록 실험실의 동물들을 편하게 살도록 해준다 할지라도 과학자들과 대학들이 그 동물들을 실험동물용번실업체로부터 구입했으므로 실제로는 ‘소유’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면 그러한 주장이 정당하다고 인정하기엔 현재로서는 매우 어렵다.

프랜시온은 그러한 동물권리는 개혁과 완전히 양립하거나 전혀 양립할 수 없음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모든 것은 어떻게 우리가 개혁을 규정짓고 권리와 해방의 궁극적 목표들과 동물들을 관련짓는가에 달려있다.

동물착취를 지지하면서 도덕적, 정치적, 경제적으로 부패한 거대조직이라는 평화롭고 합법적인 수단들을 없애도록 하는가, 아니면 동물 권리에 계속해서 다가가야 하는가 라는 문제들 사이에서 몇 가지 접근들은 논쟁의 여지가 있는 민감한 미봉책을 제안한다.

동물권리의 목적을 약화시키기 위함이 아닌 강화를 위한 개혁의 방법으로서 프랜시온은 입법화되어야 할 최소한의 4가지의 조항들을 정립한다.

(1) ‘보다 인간적인’ 기준으로 동물들의 처우개선을 하기보다는 착취의 특수한 형태를 없애거나 금지해야만 한다.

(2) 공리주의적 이유들로 동물들의 이익이 교환되거나 희생되는 것을 거부해야 한다.

(3) 그러므로 동물생명의 고유한 가치에 대한 개념으로 알려져야 하며, 재산의 목적이 아닌 생명의 주체로서 인정받지 못함을 거부한다. 그리고,

(4) 모든 동물들을 향한 착취를 없애도록 하는 요구가 수반되어야만 한다.

프랜시온은 의학적 화상실험에 사용되는 동물들의 수를 감소시킨 개혁을 평가하기를 거부하겠지만, 화상실험에 동물들이 사용되는 것을 효과적으로 방지할 수 있도록 국회법으로 지원자금을 중지하게끔 하는 일은 흔쾌히 받아들일지도 모른다.

이 법은 모든 형태의 착취로부터 동물들을 해방시킨다는 그 목적 자체로 부터가 아닌, 이러한 특수한 사례에서 착취되는 집단의 미약한 개선을 훨씬 뛰어넘어 실효된다. 마찬가지로 프랜시온은 6마리에서 2마리로 베터리 케이지안의 산란닭의 수를 감소시키라는 요구를 지지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베터리 케이지 조직체계를 폐지하기 위한 투쟁이나 혹은 재산으로서의 닭이라는 개념에 대한 의문이 없는 좀더 ‘인간적인’ 대우를 수반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페타가 거대 패스트푸드사들을 대상으로 삼았던 캠페인을 그저 개량된 조치라는 그의 견해로 비추어 볼 때, 그가 이를 지지하지 않을 것임은 분명하다.

페타의 캠페인은 (1)과 (2)의 조항에 부합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타가 동물들이 고유한 가치를 지닌다는 사실을 항상 옹호해왔듯이, (3)과 (4)의 조항대로 이행해왔음 (그들의 유명한 포스터와 차량용 스티커에는 “동물들은 우리가 먹고 입기 위해서, 혹은 실험용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라는 문구가 있다.) 과 더불어 동물들이 인간의 재산이라는 개념을 거부했다는 사실은 주목할만하다.

(http://www.peta.org/mall/cc.htmlhttp://www.veganstore.com/index.html를 참고)

장기적 안목이 결여된 미온적인 복지 단체나 급진적이고 타협하지 않는 동물권리단체가 되기보다는, 페타는 동물권리 철학, 채식주의, 동물이 이용되지 않은 제품들의 생산을 위한 전진을 계속하면서 생체해부, 써커스와 로데오, 그밖의 동물학대와 관계된 기관들의 철폐를 이끄는 두 가지 방식의 전략을 취한다.

혁명은 진보를 통해서, 진보는 혁명을 통해서

동물해방은 분명히 장기간의 투쟁이다. ; 그러는 사이에 가능한 한 많은 동물들의 삶을 개선시켜야 함은 필연적이다. 동시에 프랜시온의 경고에 귀를 기울여 우리가 오로지 예속과 착취의 기관들의 개선과 그를 통해 동물들의 인도적 처우를 합법화하는 늪에 빠져서는 안되며 우리는 궁극적으로 그러한 것들을 폐지하는데 몰두해야 한다.

미약한 복지론자들의 근거로 비추어 볼 때, 우리는 현재 자행되는 케이지 안에서 고통받는 동물들을 위한 전투에서 약간의 승리를 거두었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동물들의 해방이라는 더 넓은 의미의 전쟁에서는 지고 만다.

장기적 안목에서 볼 때 페타가 오로지 개혁만을 받아들이거나 육류산업에 더 이상 압력을 행사할 수 없는 막다른 곳으로 되돌아간다면 캠페인은 실패할 것이고, 이런 식으로 그들은 사실상 동물 착취에 공범이 된다. 그러나 페타는 그 3개의 거대회사를 감시하고 있고 다시 항의를 계속할 것이며 그들이 요구의 수위를 지속적으로 높여나가길 나는 기대한다.

문제는 개혁이 아니라 본래 동물해방을 종결하기 위한 매개로서의 개혁을 끝내야 한다는 사실이다. 만일 우리가 동물해방과 더불어 생체해부, 공장식 농장, 도살장, 동물오락산업과 그 밖의 것들의 폐지가 우리의 궁극적 목표임을 지속적으로도 분명하게 인식한다면, 우리는 직면한 개혁을 이루어 내면서 근본적인 원인들을 바꾸는 일이 가능하다.

순수주의라는 장애물은 무력감과 절망감으로 인도하지만, 우리가 성취가능한 개혁들을 이루어냈듯, 우리는 동물운동을 강화해나가고 장기간의 목표를 향한 투쟁을 지속시킬수 있는 근원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프랜시온의 강령들은 개혁과 혁명사이, 복지와 권리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하지만 어느 상황에서는 지나치게 엄격할지도 모른다. 육류와 식품산업은 너무나 넓고 너무나 확고하게 고착되어 있어서 동물들이 받는 고통은 우리가 강화된 전략만으로 보장하기에는 너무도 극심하기 때문이다.

‘인도적 도살’이 우습게 들릴지는 모르지만 동물들이 완전히 깨어서 의식이 있는채 사지가 절단되거나 삶아져서는 안된다. ‘더 넓은 케이지’에 대한 요구는 반동적이고 공범자로 보일지도 모르나 닭들이 철망 우리속에 구겨넣어져서는 안된다.

만일 미국인들이 앞으로도 계속해서 채식버거를 구입하여 동물과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을 줄일 수 있다면 식당과 맥도날드와 같은 패스트푸드점에서의 채식버거 판매는 분별력 없는 행동이 아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보다 중요한 업적은 프랜시온의 강령대로 이행해왔다는 점인데, 구체적으로 강제몰팅의 금지와 곧 희망적으로 이루어질 부리자르기 금지이다.

곧 이루어 낼수 있는 수확들을 뛰어 넘어서, 페타의 캠페인은 예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공장식 농장과 도살장에서 벌어지는 잔혹함으로 관심의 초점을 맞추는데 노력했다.

페타와 다른 단체들은 전례가 없었던 업적을 이루어왔다.

‘가금류관심협회(United Poultry Concerns)는 도살장 관계자와 그 환경에 반대하면서 “ 처음으로 (농장)동물들의 문제의 심각성이 제기되었다” 고 말했다. 이것은 실로 의미 있는 첫걸음이며 순수주의자들의 견해로도 과소평가 되지 않는다.

사람들이 육식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도록 하기보다는 그들이 배웠던 바에 의해 몸서리치며 – 페타와 다른 국제단체들은 그들의 채식교육캠페인을 통해 지속적으로 확산시키고 있다 – 그들이 육류섭취를 전혀하지 않거나 줄인다.

최종적으로는 아래로부터, 즉 계몽된 소비자들에 의해서 성장해가는 운동으로 변화되어야만 한다. 그렇지만 소비자와 육류생산업자를 변화시키기 위한 튜쟁은 현재 하나가 되어 있다.

** 스티브 베스트는 앨파소에 있는 택사스 대학의 ‘철학과 인성의 교수연합’ 에 있다.

그는 앨파소의 채식주의자협회의 부회장이면서 오랜기간 동안 채식주의자이며 동물권리운동가이고 사회이론, 포스트모던이즘과 문화학 방면에서 수많은 책과 논설들을 쓴 저자이기도 하다. 그의 저술들 중 일부는 http://utminers.utep.edu/best/ 에 게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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