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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권에 대한 윤리적 논의의 현황/허남결교수
동보연 2009-12-13 10:44:57

동물권에 대한 윤리적 논의의 현황

/허 남 결(윤리문화학과)

Ⅰ.머리말; 왜 동물권인가?

서구에서 이른바 동물권(animal rights) 또는 동물해방론(animal liberation) 동물권을 주장하는 대표적인 학자로는 레건(Tom Regan)이 있다. 한편, 동물해방론으로 일약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사람이 곧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피터 싱어(Peter Singer)이다.

이 두 입장간의 차이점에 대해서는 본문에서 자세히 살펴 볼 기회가 있을 것이다. 여기서는 다만 전자가 후자에 비해 보다 본질적인 의미의 권리 주장, 즉 모든 형태의 동물 탄압에 대해 절대적 폐지론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데 반해, 후자는 상대적으로 유연한 동물복지론에 가깝다는 점만을 우선 지적해 두기로 한다.

그러나 본문에서 필자는 편의상 다른 전제조건이 없을 경우 ‘동물해방론’을 포함하는 일련의 동물 관련 논의들을 모두 ‘동물권’이란 용어로 지칭하고 있음을 미리 밝혀둔다.

이 시대적 화두로 부상하게 된 것은 아무래도 호주의 철학자 피터 싱어(Peter Singer)가 쓴 『동물해방(Animal Liberation)』(1975)이 그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왜냐하면 이 문제작 속에서 언급되고 있는 수많은 동물들의 비참한 현실은 독자들로 하여금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동물관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각종 질병 연구 및 생체 해부용으로 희생되는 동물 마루모토들의 너무나 불쌍한 운명, 피실험 동물의 50% 이상이 고통 속에 죽어가는 의약품 독성실험 LD-50의 무자비함, 새로 나온 화장품의 유해성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토끼 눈에 강제로 샴푸 방울을 떨어뜨려 눈동자를 파괴한 사진들, 그리고 오직 인간의 미각을 위해 제대로 움직일 수조차 없는 비좁고 더러운 공장식 농장(factory farm)에서 하루 종일 햇빛도 보지 못한 채 강제로 살찌워지다가 어느 날 도살이라는 이름으로 짧은 일생을 마감하는 가축들에 대한 생생한 묘사 등은 그동안 인간과 동물의 차별적 대우를 아무런 죄책감 없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왔던 서양인들의 전통적 사고방식을 근본적으로 뒤흔들어 놓았던 것이다.

그의 책 첫 문장은 자못 비장한 어투로 시작하고 있는데, 마치 한 장의 선전포고문을 읽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 책은 인간이 아닌 동물들에 대한 인간의 폭정(tyranny)에 관한 것이다. 이러한 폭정은 지금까지 상당한 양의 고통과 괴로움을 야기해 왔고 또한 오늘날에도 여전히 고통과 괴로움을 초래하고 있다. 이것에 비견될만한 것은 오직 수세기 동안 백인들이 흑인들에게 저지른 폭정의 결과로 빚어진 고통과 괴로움이 있을 뿐이다. 인간의 동물에 대한 폭정에 반대하는 투쟁은 최근 수년 간 벌어졌던 어떠한 도덕적 및 사회적 쟁점들 못지않게 중요한 투쟁이다.”

이러한 저자의 문제의식은 책 내용 전체를 지배하고 있으며 그가 불러일으킨 반향은 실로 엄청났다. 그 후 이 책은 세계 도처에서 일어난 동물권리 인정 운동의 기본 경전이 되었음은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싱어의 『동물해방』은 인간들이 동물을 다루어 오던 기존의 방식, 즉 마치 자신의 소유물인양 필요할 때마다 임의로 사용해왔던 관행에 일대 경종을 울렸을 뿐만 아니라 ‘동물의 대우에 관한 새로운 윤리’를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말하자면 싱어는 이 한권의 책으로 당시 막 싹트기 시작하던 동물해방운동에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다는 평가와 함께 윤리적 실천가로서의 면모와 위상도 한꺼번에 거머쥐는 행운을 얻게 되었던 것이다.

싱어의 영향으로 이제 우리 주변의 어느 누구도 동물들이 고통과 쾌락을 느낄 수 있는 “유정체(sentient being)”라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게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동물에게 필요이상의 고통을 가하거나 학대하는 것을 도덕적으로 뭔가 잘못된 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를 좀더 윤리적으로 말하면 오늘날 철학자들은 인간을 비롯한 인간 아닌 동물들(nonhuman animals)의 도덕적 지위(moral status) 까지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도덕은 기본적으로 다른 조건이 같다면 두 대상을 동일하게 다룰 것을 요구한다. 즉, 인간과 동물은 도덕적으로 유의미한 차이점이 없는 한 똑같은 대우를 받아야만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철학적 질문들에 직면하게 된다. 도대체 어떤 종류의 존재가 도덕적인 관심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말인가? 오직 인간뿐인가? 아니면 인간 아닌 동물도 가능한가? 우리는 동물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 그들은 도덕적인 권리를 가지고 있는가? 동물들의 고통은 인간의 고통과 동일시되어야 하는가? 동물실험은 중단되어야 하는가? 대규모 상업(공장식) 농장은 동물에게 큰 고통을 안겨준다는 이유로 폐지되어야만 하는가? 우리는 채식주의자가 되어야 할 도덕적인 의무를 가지는가? 동물들의 도덕적 지위란 말은 정확하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등등.

이와 유사한 물음들에 대한 다양한 답변이 곧 싱어 이후 본격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한 동물권 논의의 주요 내용이 된다. 이러한 일련의 지적 환경 변화를 가리켜 박이문은 비록 늦은 감이 없지 않으나 근래에 “동물권이 주장되고 동물해방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다행스럽고... 옳고 타당한” 일이라고 말한다.

덧붙여 그는 “동물권, 동물해방이 원칙적으로 옳다고 해도 그러한 원칙이 구체적 상황에서 어떻게 실천에 옮겨져야 하느냐 하는 문제는 아직도 헤쳐 나가기 어려운 윤리적, 지적, 철학적 가시밭” 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 논문은 어설픈 대로 그 가시밭 속의 이론들로 한번 들어가 보려는 시도이다.

그와 같은 논쟁들의 내부는 대체로 레건류의 의무론적 동물권리론과 싱어류의 공리주의적 동물해방론, 그리고 이 두 입장을 둘러싼 찬반 내지는 수정, 보완 논변들로 이뤄져 있다고 볼 수 있다.

Ⅱ.동물권 논의의 역사적 배경과 인간중심주의적 사고의 예

1)고대 인도종교

종교는 그것이 속한 어떤 한 문화의 도덕관념들을 반영하고 또한 강화하는 기능을 갖는다. 종교의 이런 측면을 동물권 논의와 관련시켜 본다면 동, 서양의 다양한 종교 전통들 안에서 인간이 아닌 다른 동물 존재들이 차지하는 도덕적 지위를 살펴보는 것은 매우 유익한 일이 될 수 있다.

인도와 중국의 일부 종교 전통들은 다른 기원의 종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동물의 중요성을 더 높게 평가하고 있다. 이러한 태도는 얼핏 보아도 서양의 인간중심주의적(homocentric) 전통과는 거리가 멀다.

가령, 인도의 고전 베다(Vedas) 문헌에 나오는 비폭력(ahimsa)과 같은 가르침은 불교와 힌두교 및 자이나교의 기본 교리로 계속 전승되고 있는데, 이 개념이 갖는 대강의 의미는 “모든 살아 있는 존재들에 대해 나쁜 감정을 품지 않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인간이 아닌 살아 있는 어떤 대상에 대해 몸과 입과 마음으로 사악한 행위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또한 윤회설을 통해 현재의 자기 모습은 전생의 업에 따른 과보의 몸이라는 인식을 심어줌으로써 생명에 대한 존엄성을 강조하는 효과를 거두고 있기도 하다.

오늘 아침 기분이 나쁘다고 신경질적으로 걷어찬 강아지는 몇 년 전 돌아가신 할머니일 수도 있으며 한 세대 뒤 내 아들의 식탁에 오른 치킨은 바로 오늘의 나일 수도 있는 것이다. 몸을 바꾸어 가면서 육도윤회하는 우리들의 삶의 실상을 자각한다면 나를 포함한 일체 만물이 지닌 본질적 가치에 대해 새삼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다.

2)유대-기독교적 전통

서양의 종교 전통들인 유대교와 기독교, 그리고 이슬람교에서는 인간이 아닌 동물들에 대해 훨씬 덜 우호적이었다. 그들은 성대한 제사의식을 위해 흔히 가축을 희생물로 바치곤 했다. 성경의 창세기는 처음부터 인간과 동물의 관계 및 신분적 차이를 명시하고 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하여금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1장 26절)라는 부분과 “무릇 산 동물은 너희의 음식물이 될지라. 채소 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9장 3절)라는 언급 등은 신이 인간에게 동식물의 사용권을 전적으로 위임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물론 이런 구절의 해석을 둘러싸고 조심스런 반론, 예컨대 그와 같은 표현들은 오히려 인간들로 하여금 지상의 생명체에 대해 책임 있는 행동을 주문하고 있다는 주장들 및 한 걸음 더 나아가 동물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옹호한 아시시의 성 프란시스(St. Francis of Assisi) 같은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유대-기독교적 전통의 주류는 신의 이미지를 그대로 간직한 채 창조된 인간만이 영성을 가지며 동식물들과는 달리 인간은 정신세계와 물질세계를 모두 장악하고 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한마디로 동식물은 인간과는 다른 차원의 존재들이며 따라서 인간은 그것을 필요에 따라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다는 기본 인식을 갖고 있다.

이 전통에 따르면 도덕적으로 의미있는 존재는 인간뿐이다. 그와 같은 입장을 대표하고 있는 사람으로 우리는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를 들 수 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그는 식사 때마다 육식을 즐긴 뚱보였다고 한다.

3)데카르트

데카르트(René Descartes)의 표현을 빌리면 이성적이지 않은 존재는 감각 곧 쾌락이나 고통을 느낄 수 없는 생물학적 로봇(biological robot) 또는 의식적인 기계장치(conscious automata)에 불과하다.

그런 점에서 인간이 아닌 동물은 사고와 언어 능력을 갖춘 인간과 구별될 수밖에 없으며 당연히 도덕적 고려의 대상으로부터도 제외된다. 그렇게 되면 비이성적인 어린아이나 발달장애아들도 동물처럼 대우받아야 한다는 원하지 않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아마도 여기에 동의할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4)칸트

칸트(Immanuel Kant) 역시 동물이 인간과 같은 도덕적 권리를 가진다는 발상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인다. 동물들이 고통을 감지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우리가 그것을 피해야 할 도덕적인 의무까지 갖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의식적인 존재가 아니므로 이성적인 추론을 할 수 없고, 그 결과 도덕적 선의지도 갖추지 못한 비인격체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목적 자체인 인간에 대한 수단에 불과하다.

말 그대로 동물들은 인간의 필요에 의한 도구적 가치만 지닐 뿐 결코 도덕적 존재들의 영역인 ‘목적의 왕국(the kingdom of ends)’에 들어 올 수 없다. 다만 가능하면 우리는 동물을 학대하거나 거칠게 다루기보다는 따뜻하게 보살펴야 하는데, 그 이유는 동물에 대한 직접적인 의무에서가 아니라 인간의 바람직한 도덕성 함양이라는 간접적 교육 효과를 얻기 위해서이다.

칸트는 인간이 아닌 동물을 잔인하게 대하는 사람은 자신의 성격도 함께 포악해질 위험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경험은 우리들에게 어릴 때 개나 고양이를 괴롭히는 것을 좋아 하던 아이는 나중에 성인이 되고 나서도 다른 사람을 못살게 구는 나쁜 성향을 띠게 된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이런 그의 입장은 아퀴나스와 비슷한 점이 있다.

5)사회계약론

도덕철학의 또 다른 전통인 사회계약론(social contract theory)에서도 동물은 배제되고 있다. 이 이론에 따르면 도덕은 사회구성원들 사이에 이루어진 비공식적인 합의의 산물이다. 다시 말해 그것은 상호 신뢰가 전제된 가운데 각자 합의된 도덕규칙을 준수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도덕적 판단능력이 없는 동물들은 이러한 계약의 당사자가 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그들에게 아무런 도덕적 의무를 갖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특정 동물들에게 어떤 도덕적 의무를 지니고 있는 것처럼 보일 경우가 있다면 그것은 그 동물에게 대한 것이 아니라 동물 소유자의 개인 재산권을 보호한다는 차원에서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웃집의 애완견에게 독약을 먹여서 안되는 것은 다른 사람의 자동차를 파손해서는 안되는 것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우리는 남의 재산을 함부로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계약에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전통적인 서양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인간이 아닌 동물들에게 어떠한 마음의 빚도 지고 있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싱어는 이와 같은 지적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과감한 도전을 하게 되었고 그것이 오늘날과 같은 동물권 및 동물해방운동의 전 세계적인 확산을 가져오게 되었던 것이다.

물론 그전에도 익명으로 출판한 테일러(Thomas Taylor)의 『Vindication of the Rights of Brutes』(1792) 및 살트(Henry S. Salt)의 『Animal Rights』(1892)와 같은 동물의 권리를 다룬 선구자적 저술들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Ⅲ.피터 싱어의 동물해방론

1)이익 동등고려의 원리

싱어의 글을 읽고 있으면 삼겹살과 치킨을 즐겨 먹는 우리의 식생활 자체가 갑자기 무거운 철학의 주제가 되어 버린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정도로 머리 속이 복잡해진다. 거의 매일 일반 가정의 식탁에 오르는 닭이나 소, 돼지 등 가축의 이익이 인간의 이익과 동일한 맥락에서 도덕적 고려의 대상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가 제안한 ‘이익 동등고려의 원리(the principle of equal consideration of interests)’는 모든 인간의 평등을 보장해 줄 평등의 근본 원칙임과 동시에 우리와 같은 종족이 아닌 것들, 즉 인간이 아닌 동물들과의 관계에도 적용되어야 할 보편타당한 도덕적 근거라고 말해진다.

여기서 ‘이익(interests)’은 누군가가 “욕구하는 모든 것”으로 이해되며, 이는 본질적으로 다른 존재의 욕구와 양립하지 않아도 무방하다. 이와 같은 싱어의 이익 개념은 기본적으로 벤담(Jeremy Bentham)의 입장을 계승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쾌락주의적 공리주의자인 벤담에 따르면 이익은 “이성적 추론을 할 수 있거나 언어 능력을 가진” 존재만 추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생명체라면 본능적으로 욕구하게 되는 그 무엇이다.

따라서 그 이익에 인간과 인간 아닌 동물의 구별이란 있을 수 없다. 말하자면 괴로움(suffering)이나 즐거움(enjoyment)을 향유할 수 있는 능력은 이익을 갖는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의 기본 전제조건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길거리의 돌을 걷어차는 것은 돌의 이익 고려와 관계없는 일이지만 이유 없이 현관의 강아지를 쥐어박는 것은 명백히 강아지의 이익을 침해한 행위가 된다. 왜냐하면 전자는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사물이지만 후자는 쾌고의 감수능력을 지닌 생물체이기 때문이다. 즉, 싱어에게 있어서 다른 존재의 이익에 관심을 가질지의 여부를 판가름하는 유일한 경계는 유정의 유무, 곧 감각(limit of sensation)이 되는 셈이다.

그러나 우리가 동물을 다루는 방식, 예컨대 “식사, 사육방법, 수많은 과학 영역에서의 실험절차, 야생동물의 사냥, 덫 놓기, 모피 옷, 서커스, 로데오, 동물원과 같은 오락 영역” 등에서는 그런 원칙을 전혀 찾아 볼 수 없다는 것이 싱어의 고발이다.

그는 동물에 대한 인간의 차별적 태도를 “종차별주의(speciesism)”라고 부르는데, 이러한 편견은 자신이 속해 있는 ‘종(species)’에 도덕적인 우월성을 부여하는 것으로 윤리적 의미에서 볼 때 “성차별주의(sexism)”나 “인종차별주의(racism)” 못지않게 옳지 않은 것이라고 본다.

여기서 유의해야 할 것은 “평등(equality)이라는 기본 원리를 한 집단에서 다른 집단으로 확장시켜야 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 양 집단을 동등하게 대우(treatment)해야 한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는 점과, 또한 양 집단이 동일한 권리(rights)를 가져야 한다는 사실을 함축하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곧 인간은 인간의 본성(nature)에 따라 동물은 동물의 본성에 따라 대우해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싱어는 이런 도덕적 자세를 가리켜 ‘평등하거나 동일한 대우(equal or identical treatment)’가 아니라 ‘동일한 고려(equal consideration)’ Peter Singer(1995)라는 표현을 쓴다.

좀더 알기 쉽게 비유하자면 우리가 추위와 배고픔으로 고통 받는 가축의 이익을 배려한답시고 그들에게 호화 주택이나 고급 식사를 제공하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행동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그와 같은 행동은 동등한 고려의 범위를 훨씬 넘어서는, 말하자면 부당한 대우에 해당할 것이다. 이익 동등고려의 원리를 제안한 싱어 자신은 인간의 이익과 동물의 이익 사이에서 철저한 채식주의를 선택하고 있다. 공리주의자인 그에게는 현실적으로 그렇게 하는 방법 외에 동물의 고통을 최소화할 수 있는 다른 행위전략을 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

2)폴란(Michael Pollan)과 프레이(R. G. Frey)의 반론

싱어의 동물해방 주장에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공감을 표시하거나 동의한 것이 사실이다. 그의 영향으로 동물운동가들이 조직화되고 한 때 채식주의가 일부 지식인들 사이에서 전 세계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키게 된 것 등은 이를 반증해 주고도 남는다.

그러나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싱어의 윤리적 입장은 모든 이론들의 운명이 그렇듯이 다시 도전받는 위치로 전락하게 된다. 여기서는 폴란의 ‘동물복지론(animal welfare)’과 프레이의 ‘불평등-가치 테제(the unequal-value these)’를 간략하게 살펴보기로 한다.

폴란은 싱어가 제안하고 있는 동물해방 또는 동물권리를 옹호하는 논변들을 자세히 검토한 다음 그의 입장은 오히려 동물복지론에 더 가깝다는 결론을 내린다. 왜냐하면 싱어의 논리를 따라가다 보면 결국 우리는 그들의 이익, 즉 고통을 완화하고 즐거움을 주는 쪽으로 행위하라는 주문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이는 모든 동물을 해방하라거나 그들의 권리를 인간과 동일한 수준으로 존중해 줄 것을 요구하는 주장이라기보다는 현재 공장식 동물농장이나 실험실 등지에서 비참하게 일생을 마감하고 있는 동물들을 좀더 나은 환경에서 다룰 필요가 있다는 호소, 곧 그들의 복지 조건을 개선하라는 말에 다름 아니다.

그에 따르면 현실적으로 실천하기 어려운 완전한 의미의 채식주의 보다는 동물들이 자연스러운 환경 속에서 최대한 고통 없는 삶을 누리다가 필요할 경우 위생적인 방법으로 도축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 동물 대우 방식이라는 것이다.

폴란은 그와 같은 이상적인 동물농장의 예로 버지니아의 한 농장 Polyface Farm을 든다. 그곳에는 여섯 종류의 가축들이 각자의 본성에 따라 마음 놓고 살 수 있는 자연환경이 조성되어 있다. 소와 돼지, 닭, 토끼, 칠면조, 그리고 양들은 자신들의 “생리학적 차이점을 충분히 표현”하면서 공동생활을 영위한다.

그들은 필요에 따라 서로 협력하거나 경쟁을 하기도 하면서 소는 소답게, 돼지는 돼지답게, 닭은 닭답게 평화로운 삶을 영위하다가 궁극적으로는 인간들의 식탁에 오르는 운명을 맞게 된다.

폴란은 이처럼 동물을 그들의 타고난 본성에 따라 살 수 있게 배려한 다음 인간의 목적을 위해 사용하는 것은 누가 보아도 동물학대와는 거리가 먼 인간적인 행위가 아니냐고 반문한다.

폴란은 또한 동물해방론자나 권리론자들은 동물을 ‘개체(individuals)’로서만 파악하려 한 나머지 부분적인 현상에 불과한 그들의 고통과 해방을 호소하고 있으나 동시에 동물들은 자연계 내에서 ‘종(species)’ 전체의 지위를 계속 유지하고자 하는 본능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가령, 인간의 정착생활과 함께 시작된 가축의 사육은 바로 이와 같은 종의 생명권 추구와 인간의 이익이 맞아 떨어진 진화론적 발달의 모범 사례이다. 인간과 동물의 동거는 동물의 입장에서 보면 열악한 자연환경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수단이 되는 반면, 인간으로서도 힘든 사냥의 부담에서 벗어나 손쉽게 식량을 확보할 수 있는 현명한 생활 방편이 된다.

이 과정에서 인류는 자연스럽게 육식을 할 수 있는 신체구조, 예컨대 치아와 소화기관을 발달시켰다. 따라서 고기를 먹는 것은 우리 인간들의 ‘동물성(animality)’과도 일치하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식생활습관에 불과한 것이다.

그의 입장에서 보면 이와 같은 진화의 결과를 무시하고 싱어처럼 채식을 고집하는 것은 오히려 자연의 이치에 어긋나는 부자연스러운 행위이다. 우리가 고려해야 할 것은 본질적인 의미에서의 동물의 권리가 아니라 실천가능한 차원에서의 동물의 복지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동물들의 자연적 본성이 제한 받지 않는 동물농장, 그리고 고통 없이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는 도축 시설을 갖춘 인간적인 동물농장을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프레이에 의하면 공리주의는 싱어가 옹호하고자 하는 일방적인 성명서나 제안들을 정당화해 줄 수 있을 만큼 완전한 윤리이론이 아니다. 인간의 정신구조와 사회제도는 생각보다 훨씬 더 복잡한 것이어서 싱어가 염두에 둔 ‘공리성(utility)’은 오히려 동물들을 착취할 때 더 많이 산출될 것이라고 본다.

프레이 역시 우리에게 시급한 것은 동물의 해방이나 권리 인정이 아니라 현존하는 대규모 동물농장의 질적 개선과 동물실험에서의 불필요한 고통의 제거 및 안전조치들이라는 것이다.

그의 입장은 기본적으로 “첫째, 동물의 삶은 상당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둘째, 모든 동물이 다 동일한 가치를 갖는 것은 아니다. 셋째, 인간의 삶은 동물의 삶 보다 더 많은 가치를 지닌다.” 라는 것이다.

인간과 동물 및 그들 상호간의 차이는 개별 존재들의 삶이 향유하는 ‘풍요로움(richness)’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여기서 ‘삶의 질(quality of a life)’이 판가름 난다. 토끼가 누릴 수 있는 삶과 인간의 그것이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은 바로 이 풍요로움의 내용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들은 인간과 같은 수준의 삶을 스스로 개척하고 설계할 수 있는 힘이나 비전이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에 반해 인간은 토끼와 달리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자율성(autonomy)’ 및 ‘작인(agency)’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하여 프레이는 동물들이 “삶의 질을 가질 수 없거나 그 결과 그들의 삶이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은 결코 아니라고 말한다. 다만 그들의 삶이 갖는 “풍요로움과 질 및 가치”는 “정상적인 성인 인간(normal adult humans)”이 가질 수 있는 그것과 모든 면에서 동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자는 것이다. 여기서 그의 ‘불평등-가치 테제’ 개념이 나온다.

문제는 정상적인 동물과 이에 못 미치는 인간, 예컨대 유아나 치매 환자, 정신지체 장애자들을 어떻게 다룰 것이냐 하는 것이다. 그들을 동물 대신 각종 의학실험에 동원해도 좋은가? 프레이는 이론적으로 그와 같은 위험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솔직히 시인한다.

그가 동물의 생체실험을 부분적으로 찬성하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불평등-가치 테제’의 당연한 귀결이다. 그들의 희생은 보다 가치 있는 존재들인 인간에게 유익한 의학적, 과학적 연구결과를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프레이는 싱어를 비판하기 보다는 수정, 보완하는 입장에 서 있는 같은 공리주의자라고 볼 수 있다.

Ⅳ.톰 레건의 동물권리론

1)본래적 권리론

의무론에 바탕을 둔 레건의 동물권리론은 이론적인 면에서 싱어의 동물해방론보다 훨씬 더 급진적이다. 레건이 생각할 때 우리가 도덕적으로 고려해야 할 대상은 ‘본래적인 가치(inherent value)’를 갖는 모든 존재들이다.

본래적인 가치란 개체들이 그들 고유의 선함이나 다른 존재들에 대한 유용성과는 독립적으로 지닌, 말 그대로 타고난 가치이며 권리란 바로 이 본래적 가치를 보호하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바위나 강, 나무, 빙하 등은 몰라도 최소한 한 살 이상의 정신연령을 가진 포유류는 모두 본래적 가치를 지니고 태어난 존재들이다.

이 가치는 스스로 ‘삶의 주체(subjects of a life)’임을 경험할 수 있는 존재들이 갖는 특별한 권리이기도 하다. 그것은 사회마다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는 법적인 권리가 아니라 자기가 속한 ‘종(species)’을 초월하여 삶의 주체라면 누구나 향유할 자격이 있는 도덕적 권리임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우리는 본래적인 가치를 지닌 모든 동물들을 도덕적으로 존중하지 않으면 안 될 의무를 갖게 되는 것이다. 레건은 우리들 주변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잡아먹히고, 사냥되고, 실험실에서 사용 후 버려지는” 동물들이 사실은 우리와 똑같은 ‘삶의 주체’임을 상기시킨다.

‘삶의 주체’는 ‘본래적 가치’를 갖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동물권 침해 행위는 지금도 세계 도처에서 자행되고 있다. 그래서 그가 내린 결론은 식용고기를 대량으로 생산하는 동물농장과 동물을 대상으로 하는 각종 과학실험을 ‘무조건 폐기할 것(categorically abolition)’을 주장한다.

그에게 있어서 동물의 복지를 고려하거나 실험 방법의 개선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 모든 것의 ‘전면적인 제거(total elimination)’만이 동물들의 본래적 권리를 회복할 수 있는 원천적인 방법이라고 역설하는 것이다. 레건 자신은 권리론적 견해야말로 가장 만족스러운 도덕이론이라고 믿는다.

그의 이러한 입장은 평등주의적이고 각 개체들의 권리와 가치를 존중하는 장점이 있으나 유사한 가치들이 대립할 경우 흔히 의무론이 그런 것처럼 행위를 안내할 어떠한 원리도 제시하지 못한다는 비판에 직면한다.

레건의 반-공리주의적 권리론은 그가 예로 든 네 명의 성인과 한 마리의 개가 탄 구명정(lifeboat) 사례에서 보듯이 역설적으로 공리주의적 문제해결 방식을 불러들인다. 만약 그 중에서 어느 한 사람이 배 밖으로 던져져야 한다면 우리는 서슴없이 개를 선택할 것이다. 그 개가 백만 마리가 되어도 결론은 마찬가지이다.

이런 경우 ‘본래적 가치’를 지니고 있고 ‘삶의 주체’인 인간과 개를 동동하게 다루어야 한다는 레건의 권리론은 전혀 현실적인 행위 지침이 되지 못함을 알 수 있다.

2)마찬(Tibor R. Machan)과 워렌(Mary Anne Warren)의 반론

이런 레건의 주장에 대해 마찬은 한마디로 지나치다는 입장이다. 동물에게는 아무런 권리가 없으며, 따라서 해방될 것도 없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인간과 다른 동물들 사이에는 양자를 구분하는 뚜렷한 경계선이 있는데, 그것이 곧 동물에게는 없는 인간의 ‘도덕적 선택(moral choices)’ 능력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도덕적 선택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도덕적 공간(moral space)’, 즉 ‘간섭을 받지 않는 것을 보장받음(a guarantee of noninterference)’을 필요로 한다. 우리들의 자연적 생명권과 자유, 그리고 재산권은 이를 보장하는 보증서들이다.

그러나 마찬은 인간 이외의 다른 동물들은 도덕적 선택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도덕적 공간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따라서 그들에겐 아무런 자연권도 없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동물들을 우리의 이익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것은 도덕적 의미에서 그들보다 더 큰 이와 같은 중요성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주장이 우리가 멋대로 동물들을 사용해도 좋다는 뜻은 아니라고 말한다. 동물들을 배려하지 않는 사람은 ‘성격적인 결함(a defect of character)’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와 함께 그들 또한 고통과 쾌락을 느낄 수 있는 자연 존재라는 사실도 염두에 두기를 바란다.

마찬이 말하는 도덕적 선택 능력은 인간과 동물 및 바위와 같은 자연대상을 그 중요성에 따라 분류하는 기준이 된다. 인간들은 도덕적 결정을 하기 위해 “용기, 신중함, 정의감, 정직성, 그리고 그 외의 다른 덕목들” 을 발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란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는다. 그러나 동식물이나 바위는 그와 같은 도덕 관련 사유능력이 없다. 우리가 동물을 필요할 경우 임의로 사용할 수 있는 근거도 바로 여기서 연역된다.

마찬의 견해를 빌리면 레건의 동물권리론은 ‘자연의 사실(a fact of nature)’에 어긋나는 억지에 가깝다. 자연의 사실에 따르면 인간과 동물 간에는 엄연히 종 차이가 있으며 오직 인간만이 권리를 가질 수 있는 도덕적 선택 존재라는 것이 마찬의 결론이다.

다음에는 워렌의 반론을 소개해 보기로 한다. 워렌은 레건의 의무론적 입장이 인간과 고등동물들 사이의 중요한 차이, 예컨대 우리들의 이성 능력을 간과한 잘못을 범했으며 그가 말하는 ‘본래적 가치’ 개념도 애매하기 그지없다고 비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우리는 동물들을 친절하게 대할 의무와 선한 이유 없이 죽이지 않을 의무, 그리고 그들의 삶을 즐겁게 만들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할 의무” 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자신의 입장을 가리켜 워렌은 ‘약한 동물권리론(a weak animal rights theory)’이라고 명명한다. 워렌은 보다 분명한 어조로 “모든 합리적인 인간 존재들은 동등한 자격을 갖춘 도덕 공동체의 일원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들의 행동에 대해 서로 추론(잘잘못을 따짐)할 수 있는 반면, 이를 동물들과 할 수는 없기 때문” 이라고 말한다.

다만 레건의 추론은 애매모호한 본래적 가치 개념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우선 레건은 자신의 본래적 가치 개념을 ‘개체(individuals)’에만 적용함으로써 ‘종(species)’이나 ‘생태계(ecosystem)’ 같은 보다 상위 개념은 본래적 가치를 갖지 못한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상식적으로 볼 때 ‘개체’ 못지않게 ‘종’이나 이들을 포함한 ‘생태계 전체’의 본래적 가치도 중요한 고려사항일 텐데 말이다. 뿐만 아니라 본래적 가치를 지닌 동물들 사이의 도덕적 지위를 도대체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 하는 문제도 생긴다.

여기서 우리는 막연하고 애매모호한 본래적 가치 대신 좀더 정확한 판단기준인 이성능력을 도입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워렌의 입장이다. 그는 자신의 ‘약한 동물권리론’을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요약하고 있다.

첫째, 그들의 자연적 삶의 양식이 어떤 만족의 추구를 포함하는 모든 생물은 그와 같은 만족을 추구할 기회를 강제로 빼앗기지 않고 살 권리를 가진다.

둘째, 고통과 괴로움, 또는 좌절을 느낄 수 있는 모든 생물은 어떤 절박한 이유 없이 그와 같은 경험들을 의도적으로 강요받지 않을 권리를 가진다.

셋째, 모든 유정체는 선한 이유 없이 죽임을 당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여기서 그가 자신의 도덕적 입장을 ‘약한 동물권리론’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 이 기준들만 준수해도 현재 지구상의 동물들이 당하고 있는 많은 고통들은 상당부분 해소 될 수 있다고 본다.

Ⅵ.향후 동물권 논의의 전망; 권리론 또는 복지론에서 환경론으로?

1)바너(Gary E. Varner)의 대화론

동물의 권리도 좋고, 동물의 해방도 그럴 듯 해 보이지만 윤리는 어디까지나 현실이라는 땅 위에 발을 딛고 서 있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볼 때 개인적으로 필자는 동물의 권리나 해방이 아니라 실제로 동물의 고통을 덜어주고 그들의 본성에 따른 삶을 공급하자고 제안하는 동물복지론의 이론적 유연성과 실천전략에 호감이 가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과학실험과 식용 및 오락을 위해 동물들을 사용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쟁들은 쉽게 타협점을 찾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서로의 주장들에 대해 배타적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너(Gary E. Varner)는 크게 동물복지론자와 동물권리론자로 양분되는 동물권리운동 진영 내의 대화가능성을 조심스럽게 타진한다.

위에서도 살펴보았듯이 예컨대, 복지론자들은 동물이 관련된 연구실험에서 방법의 변화를 찾아보자고 제안하는 반면, 권리론자들은 그와 같은 연구의 전면적인 폐지를 주장한다.

또한 복지론자들은 사회제도 내에서 활동하고자 하지만 권리론자들은 목적 달성을 위해 탈법적인 행위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들은 도둑질, 사보타지, 또는 심지어 폭력도 행사한다. 여기서 바너는 우리들에게 그들의 입장을 좀더 철학적인 관점에서 재검토해 볼 것을 주문한다.

그러면 우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이 “도덕이론적인 수준에서는 불일치하나 정책의 수준에서는 동의할 잠재력이 있는 사람들, 즉 수렴(convergence) 집단”과 “두 수준 모두에서 동의할 사람들, 즉 일치(consensus) 집단” 으로 나누어지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동물복지론자들 사이에서는 대체로 일치의 전망이, 그리고 동물권리론자들 사이에서는 대체로 수렴의 전망이 엿보인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바너는 항상 서로 대화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을 필요성이 있으며 그럴 때 비로소 우리는 좀더 완전한 이론과 좀더 효과적인 정책 대안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2)캘리코트(J. Baird Callicot)의 환경론적 입장

캘리코트는 지구의 도덕 영역에는 두 가지 이데올로기, 즉 ‘윤리적 인도주의자들 또는 인간종중심주의자들(the ethical humanists or anthropocentrists)’과 ‘인도주의적 도덕론자들 또는 동물해방론자들(the humane moralists or animal liberationists)’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외에도 ‘윤리적 전체론자들 또는 환경론적 윤리론자들(the ethical holists or environmental ethicists)’로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환기시킨다.

그는 인간종중심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이성의 기준과 동물해방론자들이 제안하는 감각의 기준은 각각 도덕적인 고려가능성을 타진하는 단일 기준으로서는 심각한 문제점들이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보다 전체론적인 기준, 예컨대 선함과 긍정적인 가치는 그것이 내재하고 있는 시스템의 함수 작용이라는 관점을 옹호한다.

환경론적으로 보면 어떤 사물은 그것이 “생명 공동체의 통합성과 안정성, 그리고 아름다움”에 기여하기만 하면 선한 것이 된다. 그런데 동물을 전체가 아닌 개체로서만 파악하는 동물권리론자와 동물해방론자들의 주장에 동조하게 되면 그들의 이념은 오히려 “생명 공동체의 통합성과 안정성, 그리고 아름다움”을 해치는 결과를 빚을 것이라는 것이 캘리코트의 우려 섞인 비판이다.

자연계 전체의 생존과 조화를 위해서는 때때로 약탈자의 역할이 요구되며 그 과정에서 초래되는 동식물의 고통은 자연의 일부이지 거부가 아니다. 따라서 일방적인 동물해방과 채식주의는 자연의 질서를 교란시킬 수 있는 위험한 발상이라는 것이다. 캘리코트의 전체론적 입장은 동물의 권리를 환경주의와 분리하는데 있어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평가와 함께 레오폴드(Aldo Leopold)의 ‘대지윤리(land ethic)’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켰다는 찬사를 동시에 듣는다.

그는 동물문제에 대한 환경윤리론적 접근이 갖는 근본적인 문제해결능력을 신뢰하면서도 당장 실천하기에는 여러 가지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점을 인정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교육과 희생, 절약, 그리고 기존의 태도와 삶의 양식에 있어서 사실상 혁명에 버금가는 광범위한 경제개혁” 을 요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윤리적 전체론, 즉 환경론적 윤리야말로 장기적인 안목에서 볼 때 동물권과 동물해방론의 가장 일관적인 실천원리가 될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3)사고프( Mark Sagoff)의 전망

사고프는 동물해방과 환경윤리의 관계를 ‘나쁜 결혼, 조기 이혼(Bad Marriage, Quick Divorce)’이라고 표현한다. 서로 가까이 하기에는 뭔가 문제가 있는 사이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는 환경론자와 동물해방론자의 관계를 이렇게 기술한다. “환경론자들은 동물해방론자들이 될 수 없다. 동물해방론자들은 환경론자들이 될 수 없다. 환경론자들은 생태계의 확실성과 통합성 및 복잡성을 보호하기 위해 생물 개체의 생명을 희생해야 할 것이다. 동물해방론자들은 -동물의 불행의 감소가 하나의 목적으로 중요하게 고려된다면- 원리상 동물의 권리를 보호하거나 동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생태계의 확실성과 통합성 및 복잡성을 희생시키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여기서 그는 개체를 중시하는 동물해방론이나 동물권리론을 뛰어 넘어 생태계 전체의 존재법칙과 양립할 수 있는 환경론적 시각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하여 우리가 위험에 처한 종이나 동물 또는 환경에 대한 도덕적 의무감을 갖지 말라는 뜻은 아닐 것이다.

다만 자연에 대한 도덕적 의무는 동물과 다른 자연적 사물들의 권리에 호소함으로써 계몽되거나 설명될 수 없는, 보다 고차원적인 윤리적 고려사항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충고성 발언으로 이해할 필요는 있다고 본다.

사고프 역시 캘리코트와 마찬가지로 환경론적 입장에서 동물권과 동물해방론을 수용하는 것이 이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접근방법이 될 수 있다고 보는 것 같다.

지금까지 필자는 논문의 제목 그대로 ‘동물권에 대한 윤리적 논의의 현황’을 소개하고 요약해 보았다. 평소 관심은 있었지만 한번도 본격적으로 공부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제대로 방향을 잡은 것인지 솔직히 말해 자신이 없다. 논문의 성격상 필자 개인의 견해를 굳이 피력할 필요는 없었다고 보지만 그렇다고 하여 논문의 내용이나 부정확한 정보의 인용에 대한 책임이 면제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마음속으로 이 기회에 더 많은 것을 듣고 배워야 되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글을 맺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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