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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학대의 현황과 실태로 본 우리들의 탐진치/우희종 교수
동보연 2009-02-02 21:49:19

(원문은 아래에 첨부하였으니 보시기 바랍니다.)


동물학대의 현황과 실태로 본 우리들의 탐진치

/우희종(서울대 수의과대학 교수)

I. 들어가며

생명존중사상에 근거를 두어 불살생을 기본 계율로 삼는 불교가 동물의 생명권을 전제로 ‘동물 학대 현황과 실태’라는 주제를 다룬다면 이것은 정부 보고서나 단순한 과학 연구보고서처럼 통계 수치만으로 접근해서는 안될 것이다. 또한 비폭력의 가르침을 지닌 불교도에게 있어서 동물에 대한 학대는 기본적으로 폭력의 한 유형이자 행위자의 무지와 닫힌 욕망의 문제이기도 하기에 전형적인 탐진치라는 삼독의 문제로 바라볼 수 있다.

따라서 ‘한국에서의 동물 학대 현황과 실태’라는 주제를 언급함에 있어서 이는 곧 ‘동물에 대한 우리들 마음가짐의 현주소‘를 밝히는 작업이 될 수 있다. 동물의 권리나 동물 학대라는 말에도 학자에 따라 다양한 입장이 있겠지만 넓은 의미로는 동물의 입장이 아닌 인간만의 입장을 정당화하여 동물을 도구화 하는 것이 학대에 해당될 것이요, 좁은 의미로는 누구나 눈을 찌푸리게 되는 동물에 대한 비윤리적 처사가 될 것이다.

한편 동물에 대한 학대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생명에 대한 존중이 바탕에 있어야 하기 때문에 동물 학대를 이야기하기 전에 생명이란 무엇이며, 왜 불살생이라는 생명 존중의 입장이어야만 하는가라는 점도 충분히 검토되어야 한다. 이러한 검토가 필요한 이유는 불가에서 불살생이 강조되면서 마치 생존이나 생명을 유지하는 것은 좋은 것이며, 죽음은 반드시 피해야만 하는 것이라는 인식을 많은 불교인들이 지니게 되었기 때문이다.

과연 생명은 무조건 존중되어야 하고 죽음은 어떠해서든지 피해야만 하는 것일까? 탄생은 죽음을 전제하고 있고, 과거 현재 미래라는 직선적 시간의 부정과 더불어 나라고 하는 개체의 무상성이 누누이 강조되고 있는 대승불교의 가르침 속에서 살아있는 개체의 소중함을 강조하는 생명 존중의 교학적 근거는 과연 어디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인지 나름대로의 정리가 필요하다.

불교도로서 이런 문제의식에 대한 성찰 없이 단순히 불살생이나 생명존중이라는 당위성만으로 우리 사회에서 자행되고 있는 생명에 대한 폭력성을 풀어가기는 어렵다.

불교에서의 동물 생명에 대한 존중은 윤리나 권리의 수준을 넘어 있을 지도 모른다. 또한 그동안 불교적 가르침 속에서 환경이나 생태 문제라는 거대 담론의 형태로서 비교적 풍성하게 이야기 되어왔으나, 그러한 논의의 근거인 생명 존중의 가치관이 구체적으로 일반인들의 현실 생활 속에서 어떻게 접목되어야 하는 가에 대한 논의는 그다지 활발하지 못했다.

불행히도 실생활 속에서의 불교의 불살생 정신은 그 동안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생활 규범으로서 제시되었다기보다는 주위에서 흔히 보듯 사찰 신도회의 기복적인 방생 행사 등의 모습으로 나타났고, 더욱이 방생하는 이들의 생태적 인식 부족으로 인해 오히려 자연 생태계가 훼손되는 상황까지 있었다.

이런 면에서 후기 산업사회의 대량 소비문화와 더불어 경쟁을 위한 생산성과 효율을 극대화하는 신자유주의의 물결 속에서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구체적인 동물 상황을 되돌아보고 이에 대한 성찰을 시작하는 계기로서 한국 내의 동물 학대 현황과 실태를 간략히 검토해 보기로 한다.


II. 이야기들

동물의 생명권에 바탕을 둔 우리사회의 동물학대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일단 양적인 측면과 질적인 측면에서 바라 볼 필요가 있다. 양적인 면에서는 우리 사회의 경제 성장에 따른 육식문화의 일상화가 주요 원인으로 볼 수 있으며, 이와 더불어 국내 생명과학과 의학 연구의 활성화에 수반되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실험동물 등의 문제도 지나칠 수 없다.

한편, 질적인 면에서의 상황은 매우 심각하다. 인간 중심의 가치관에 바탕을 두고 발전되어 온 산업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추구해야할 덕목으로서의 생산성과 효율은 산업 동물의 사양 및 도축 환경에 대한 철저히 무시를 조장해 왔고, 실험동물의 통제되지 않은 무분별한 남용은 물론, 증가하고 있는 유기견 문제와 같이 반려동물에 대한 사람들의 무책임한 태도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국제 사회의 OECD(국제 경제협력 개발기구) 일원국인 한국은 경제 규모의 확대와 더불어 일인당 육류 소비량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였고 이에 따른 목축산업의 비대화와 생산량 증가를 위한 업자들의 노력은 생명체인 동물을 단순 산업 소비재로 취급하는 기업화된 축산 산업 구조를 만들어 냈다. 이러한 상황은 국내에서 식용으로 사육된 후 인간을 위해 희생되는 동물의 양적 규모를 통해 간접적으로 측정될 수 있다.

소는 국내에서 연평균 250만~270만 마리의 규모가 사육되고 있으며, 돼지는 9백만~9백50만 마리, 닭은 1억~1억 3천만 마리 규모의 사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규모는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의 자료를 바탕으로 지난 5년간의 평균치를 기준으로 볼 때, 매년 10% 정도의 범위에서 변동은 있으나 비교적 안정된 수치를 나타내고 있다.

2) 도축 규모

2007년도에 국내에서 도축된 가축의 통계를 보면 표2에서 보다시피 소는 60~70만 마리소가 매년 도축되고 있으며, 돼지는 1천3백만 마리 내외, 닭은 6억~6억5천만 마리, 그리고 오리는 3천만~4천만 마리의 규모로 도축되고 있다. 닭과 돼지에서 사육되는 동물의 수보다 도축되는 동물의 수가 많다는 것으로서 알 수 있는 것은 최소한 돼지와 닭은 태어나 1년도 되지 않아 신속히 도축된다는 점이다. 실제로 사료 효율 및 육질 등을 고려하여 생산성을 포함한 경제적인 측면에서 돼지는 생후 5개월 전후, 닭은 부화 후 3-4개월이면 식용으로 도축되고 있다.

3) 수입규모

2007년 12월에 잠정적으로 계산된 농림부의 ‘축산물 수입 검역통계 순기보고('07년 12월)’에 따르면 국내에서 사육되어 도축됨으로서 희생되는 가축 외에도 국내 육류 소비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막대한 양의 육류가 다양한 나라로부터 수입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표3). 이 2007년도 수치에는 2008년도 후반기에 수입이 전면 재개된 미국으로부터의 쇠고기 수입 상황과는 달리 당시에는 미국으로부터의 쇠고기 수입구분 물량이 매우 적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한국민의 육류 소비량은 매우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참고로 2006년 현재 우리나라 사람의 1인당 육류 소비량은 약 34 kg -쇠고기 7kg, 돼지고기 18 kg, 닭고기 9 kg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이 자료에서 보듯이 다양한 육류 수입국의 분포를 볼 때 육류 소비의 문제는 전 세계적 내지 지구적 차원의 접근이 필요함을 말하고 있다.

5) 어류

쇠고기, 돼지고기와 닭고기와 같은 전통적인 육류 외에도 국내에서 소비되는 대표적 육류 중에서 어패류가 차지하는 비중을 무시할 수 없다. 어류의 통계로서 정확히 희생되는 동물의 수를 알 수 없지만 전체적 규모를 짐작할 수 있는 자료로서 해양수산부의 자료를 보면, 매년 250만~300만 톤의 규모의 어류가 인간을 위해 포획 내지 양식을 통해 희생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상과 같이 국내에서의 식용 동물의 규모는 결코 작은 수치가 아니며, 이러한 통계 수치 외에도 여기에 포함되지 못한 오리, 토끼 등 여러 동물의 숫자는 물론, 정확한 통계 수치는 없으나 한국 문화 속에서 몸에 좋다는 이유로 선호되어 식용으로 대량 사육되고 있는 개나 사슴, 뱀 등의 동물을 고려하면 이 수치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2. 산업소비재로서의 동물과 사육 환경

생명체가 아닌 산업소비재로서의 동물 학대는 기업형 공장식 축사로 상징되는 열악한 사양 환경이 대표적인 사례이며, 비단 국내만의 문제는 아니다.

산업 사회의 전형적인 모습이자 신자유주의 체제의 논리 속에서 세계적인 추세로 가속화 되고 있으나 다만 서구에서는 부작용에 대한 인식으로 상황은 점차 개선의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으나 국내에서는 여전히 생산성에만 주목하여 상황이 개선되고 있다고 볼 수 없다. 부작용으로서는 동물을 생명체로 보지 않는다는 윤리적인 문제를 넘어 항생제와 호르몬제의 과다투여 등으로 환경오염 문제를 심각하게 남기게 되고 더 나아가 기후 온난화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1) 산업형 공장식 축산 환경

수많은 소나 돼지가 좁은 공간에서 빽빽이 관리되는 모습과 더불어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도축장 모습으로서 신속히 도살된 사체가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일련의 과정을 거쳐 껍질이 벗겨지고 지육(carcass)화하는 과정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생산성 증대와 사양 관리 효율의 목적으로 전 세계적으로 파급된 집약형 공장식 사육의 문제점은 동물에게 스트레스를 주어 수명 단축을 일으킬 정도로 열악하다는 점이다. 더욱이 단시간 내의 체중 증가를 위해 사용되는 농축 사료는 동물에게 산혈증(acidosis)도 일으킬 수 있으며, 집단 관리를 위해 투여되는 항생물질은 체내 잔류 항생물질로 남기도하고 항생제 내성 병원체를 유도하기도 한다.

또한 대외적으로 보여주는 관리된 도축 환경이라는 것도 실제 상황이 되면 매우 열악해진다. 최소한의 시간과 인력을 통한 잉여 가치의 극대화라는 경영의 관점에서 생산비와 관리비 절약을 위해 그나마 만들어져 있는 규칙을 무시하고 적당히 인간의 편의를 위해 부적절한 도축이 진행됨은 다우너 소를 적당히 도축시켜 식용으로 둔갑시킨 미국의 사례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기업형 축산에서 소는 풀 대신 인간이 조합해 만든 옥수수, 대두, 보리 등으로 만든 사료 외에도 경우에 따라서는 동족의 동물성 폐기물이 첨부된 강화 사료를 섭취하고 고기가 질겨지지 않게 하기 위해 운동도 제한된다. 닭, 돼지, 더 나아가 보신용으로 사육되고 있는 개나 곰과 같은 동물들도 생산성을 위해 좁은 공간에 갇혀 지내며 이러한 사육 환경의 미비로 인해 더욱 높아진 질병발생을 방지하기 위해서 다량의 항생물질을 투여하는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다.

2) 관리되지 않는 실험동물의 남용

비록 국내에서 사용되고 있는 실험동물의 수치에 대한 공식적 조사 자료는 없어 그 양에 있어서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한국 실험동물학회에 따르면 대략 연간 500만 마리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실험동물에 대한 구체적 지침이 마련되어 사육이나 실험 방식에 대한 교육이 실시되기 시작한 것은 최근 5년 이내의 일이다. 농장동물과 실험동물 및 반려 동물에 대한 법령인 동물보호법의 꾸준한 개정 노력과 더불어 동물을 사용한 실험에 대한 윤리적이고 과학적인 부분에 대한 사전 검토 위원회가 설치된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그동안 선진국에서는 이미 20여년 전부터 추진해온 실험동물 대체기법개발에 있어서 국내에서도 작년부터 그 중요성을 인식하여 식약청을 중심으로 힘을 기울이고 있는 상황이다.

3) 심각해지는 반려 동물 현황

최근 여러 대중 매체를 통해 반려동물에 대한 인식은 많이 개선되었고, 보다 친근하고 손쉽게 반려동물을 가족의 일원으로 생각하게 되었으나 불행히도 아직 반려 동물에 대한 책임 의식은 성숙하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과거 IMF가 터진 시점 이후 국내에서는 유기견 문제가 심각히 대두되고 있으며, 지금도 꾸준히 유기견의 증가가 관찰된다. 이러한 상황은 고양이에게도 적용되며, 이에 대한 국가 차원에서의 관리 시설이나 체제는 증가하고 있는 반려동물의 숫자와 유사한 비율로 증가하고 있는 유기동물에 대한 대책으로는 매우 부족한 현실이다.

4) 인간 중심의 동물 권리

비록 숫자는 그리 크지 않을지 모르나 불교적 관점에서 언급되어야 하는 부분으로서 동물원이나 수족관에 있는 동물들이며 이들을 이용한 동물공연이다. 이미 외국에서는 이 문제에 대한 심각한 문제 제기를 통해 많은 개선이 이루어지고 있으나 국내에서는 2000년대에 들어와 논의하고 있다. 하지만 국가적 인식 부족과 삭감된 비용 등의 이유로 이 부분에 대한 개선은 여전히 답보 상태에 있다. 그나마 문제의식을 지닌 시민들의 모임과 참여에 의해 구체적으로 검토 보고된 내용이 있다.

3. 동물 생명권과 인간

동물의 생명권으로 본 동물학대 현황과 실태에 있어서의 구체적인 각각의 사례는 이미 온라인상에 많은 정보가 있어서 굳이 이 글에서 열거하지 않았다. 각자 의지만 있다면 일반인이라도 누구나 그러한 사례에 쉽게 접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인간이 동물을 물건으로만 바라보기 때문에 그렇게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는 낱개의 사례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차라리 지금과 같은 상황이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 총체적인 기원을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동물에 대한 심각한 현황은 결국 동물을 바라보는 우리 자신들의 마음가짐 문제일 수도 있다. 동물을 돈 버는 물건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인간처럼 각자 자신만의 삶이 전제되어 있는 살아있는 생명체로 볼 것인가.

분명한 것은 인간의 욕망에 의해 동물들에 대한 착취와 학대가 생기므로 이에 대한 성찰 없이는 그 무엇도 개선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국내에서 동물에 대한 학대 실태를 양적이나 질적인 것을 떠나서 간략히 줄여 말한다면 ‘동물도 생명체’라는 인식이 너무도 부족해서 생겨난다고 말 할 수 있다.

III. 나가며

끊임없는 인간의 육류 소비와 이를 위한 축산 산업의 비대화는 인구 증가에 따른 지구상의 식량 위기도 조장하는 것으로서 이것은 마치 석유라는 화석연료의 고갈에 따른 에너지 문제의 현실화라는 지금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육식이라는 인간의 끝없는 욕망에는 그것을 만족시키기 위한 수많은 동물의 희생이 요구된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까지 내려온 인간의 육식 습관을 일시에 던져버리고 채식만 하라고 하는 원론적인 주장을 되풀이하기보다는 다시 한 번 동물이라는 개념을 살펴 사안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같은 맥락에서 동물의 생명권이나 불살생계를 이야기할 때 불자들이 종종 듣게 되는 것이 ‘그러면 식물도 생명이니까 먹지도 말고 죽어야겠네’ 라는 식의 질문이다.

이러한 흑백 식의 이분법적인 질문에 대한 부처님의 답변은 간단하다. 우리 모두 서로에게 상의상존하고 있다는 연기법이다. 육식문화를 포함해서 동물의 생명권 문제를 생각할 때 위의 질문과 같은 이분법적 오류를 떠나 생각해 보면 된다. 마치 사랑이라는 말에도 이성간의 사랑, 부모가 자식에게 주는 사랑, 부처님이나 하느님의 아가페적인 사랑 등, 매우 다양한 유형의 사랑이 있는 것처럼 육식의 문제 역시 하느냐 마느냐라는 흑백의 단순 논리로 풀어갈 수 없다는 점이다. 이러한 상황은 권리를 지닌 주체로서의 동물을 상정해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육식을 하고 스포츠를 위해 동물을 죽이며, 실험을 위해 죽이기기도 하지만 때로는 식구처럼 같이 생활하면서 과연 어디까지를 된다, 안된다 하며 한 가지 잣대로서 명확한 분리선을 그을 수 있을 것인가.

생명존중의 구체적 표현은 상황과 맥락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티끌에 온 우주가 담겨있고 동시에 온 우주 역시 티끌임을 아는 불자에게 분명한 것은 하나하나의 개체로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는 그 자체로 전 우주를 담은 소우주이며, 따라서 개체고유성을 지닌 한 생명이 죽어 사라질 때 유일무이했던 그 소우주는 영원히 사라진다는 것이기에 생명 존중은 언제나 염두에 두어야 할 가르침이다.

그러나 또한 연기적 관계성에서 보면 모든 생명체가 주위와의 관계성을 떠나 존재할 수 없으며, 태어난 것은 반드시 멸하게 된다. 따라서 단 한 순간의 나의 생존이라도 다른 생명체의 죽음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생명 존중을 무조건 생존 쪽으로만 추구해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너와 나의 열린 연기적 관계성을 무시한 나만의 생존이라는 아상(我相)의 표현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생명의 존중이 결코 생명에 대한 집착을 의미하지 않는다. 생명을 존중하되 결코 머무르지 않음이다.

한편, 동물 생명에 대한 교리적인 접근과 더불어 현실적 맥락에서 이야기를 전개한다 해도 현재 우리 사회가 보여주고 있는 후기산업사회의 특징적인 욕망의 추구는 동물의 생명권뿐만 아니라 인간 스스로의 생존마저 위태롭게 한다.

이제 굳이 생태적 관점과 가치관을 지니고 있지 않은 일반인도 이러한 면을 충분히 알 수 있는 상황이 되었고, 결국 인간의 생존과 동물의 생존은 서로 연계되어 있어서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동물과 사람 모두 유사한 생명체로서 생존을 위한 욕망은 충분히 존중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물의 욕망은 환경에 의해 조절되지만, 인간은 환경뿐만 아니라 스스로의 욕망에 억압됨으로써, 자신의 욕망을 만족시켜야 한다는 강박적 욕망을 통해 다시금 억압되는 욕망 재생산 구조를 지니고 있다. 욕망이 욕망을 낳는 강박적인 인간의 중독된 욕망은 반복을 거쳐 스스로를 욕망의 굴레 속에 넣어 생태계를 파괴하고 더 나아가 인간 스스로를 파괴한다. 인간이 자행하는 살상과 동물 학대의 업은 이미 우리 코앞에 와 있다. 새로운 돌연변이의 출현으로 인간에게 치명적으로 작용할지 모르는 조류독감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확산 추세인 광우병이나 사스 등의 신종인수공통질병도 결국 경제와 실용 논리로 무장한 인간 욕망의 산물이다.

결론적으로 우리 사회 속의 동물 학대는 우리의 마음을 비추어 내는 거울이다. 생산성이라는 탐심과 육식에 깔려 있는 다른 생명체에 대한 진심, 그리고 그러한 우리의 행위가 빚어내고 있는 결과에 대한 무지라는 치심의 반영이다. 이러한 탐진치라는 우리의 모습은 동물을 돈으로 바라보는 욕심을 버리고 생명에 대한 애정을 통해 인간과 동물이 이웃으로서 어우러질 수 있는 인식에의 전환이요, 가치 기준의 전환으로 극복될 수 있다. 그렇기에 동물 학대가 일상화되고 더욱 증가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동물 생명에 대한 실천적이고 적극적인 문화 운동을 통해 이 시대의 빛이 되는 것이 불자에게 주어진 또 하나의 사명일지도 모른다. 그러한 불자의 마음가짐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소욕지족이라는 언제나 새로운 옛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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