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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복지인가 동물권리인가, 잘못된 대립 허물기/스티브 베스트 박사
동보연 2008-04-03 00:50:46

동물복지인가 동물권리인가

-잘못된 대립 허물기-

글: 스티브 베스트 박사 ( Dr. Steve Best) sbest1@elp.rr.com

우리 사회에서 동물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현저하게 달라지고 있다는 것은 매우 자명한 일로서 이러한 현상은 도처에서 찾아볼 수 있다.

동물들은 복합적인 마음과 감정을 갖고 있지 않다고 주장하는 행동심리학자들의 학설은 동물과 인간에 대하여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 자체를 바꾸게 하여 주는 수없이 많은 과학적인 고찰과 초석이 되고 있는 연구들에 의하여 반증되고 있다.

하버드대학과 같은 유명 대학에서도 '동물의 권리와 법률'에 대한 강의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하버드대학에서 이 과정를 강의하고 있는 저명한 교수인 스티븐 와이즈 (Steven Wise) 는 지난 해 전국적인 관심을 모아 라디오와 TV를 통한 인터뷰 또한 광범위하게 이루어졌었다.

럿거스(Rutgers) 대학에서는 미국 내 최초로 동물의 권리에 관한 법에 대하여 가르치는 센터를 창설하였으며 인간 이외의 다른 종의 권익을 위하여 변호할 수 있는 변호사들을 양성하고 있다. (http://www.animal-law.org 참조)

전 세계적으로 다른 교수들이 동물복지를 가르치는 학구 직을 맡아 보고 있듯이, 동물해방의 저자 피터 싱어(Peter Singer) 도 현재 프린스턴 (Princeton) 대학에서 생명윤리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동물 연구" 라고 하는 새로운 분야는 아프리칸-아메리칸 (*미국의 흑인을 존중하여 부르는 명칭), 멕시코계 미국인, 게이와 레즈비언, 여성이슈, 그리고 환경에 관한 연구들과 나란히 학계에서 그 자리를 차지해 가고 있으며 수많은 학생들에게 새로운 의식의 장을 소개되고 있다.

다양한 회담들과 더불어 동물 이슈(Animal Issues), 사회와 동물(Society and Animals), 그리고 종들 간(Between the Species) 과 같은 저널들이 의견의 교환을 위한 토론의 장으로 부상되었으며 노스 캐롤라이나(North Carolina) 주립대학에서는 철학자인 탐 리건(Tom Regan) 이 저술하고 수집한 자료들을 이용하여 동물권에 관한 연보를 창간하였는데 이는 대학의 영구 보존 문서록에 포함된 최초의 동물권 연보이다.

전국에 거쳐서 도메스틱 애니몰 (*Domestic Animal; 야생동물의 반대개념으로 보면 되겠음)에 대한 학대를 단순한 경범죄에서 중형에 해당하는 범죄로 바꾸고자 하는 움직임이 일어나게 되었고 텍사스(Texas)에서는 2001년 9월에 그러한 법이 발효되었다.

1999년, 클린턴 대통령 (President Clinton)은 여자들이 굽이 뾰족한 구두를 신고서 작은 동물을 죽을 때까지 짓밟은 장면을 담은 "크러쉬 비디오 (crush video)"를 금지하고 동물학대를 묘사한 영상물을 주 간(interstate)에 팔아서 영리를 취하는 사람들은 최고 5년 형에 처하는 법안을 승인하였으며 이로써 동물학대의 문제를 대통령의 권한 수준으로까지 끌어올리게 되었다

게일 아이스니츠의 도살장 (Gail Eisnitz's Slaughterhouse, 1997)과 같은 책은 인간의 저녁 밥상에 철璨윤瘦沮?동물들이 겪게 되는 끔찍한 고통에 대하여 전국적인 주목을 이끌어내었다. 2000년 5월, 시애틀(Seatle)의 킹(King) TV 방송국과 www.king5.com 사이트에서 는 의식이 있는 채로 사지가 절단되는 동물들에 대한 증거 자료로 '인도적인 농장경영을 위한 협회'(the Humane Farming Association) 에서 몰래 카메라로 찍은 장면들을 보도하였다.

이러한 참혹한 도살 행위는 도살 전의 동물은 무의식 상태이어야 할 것을 규정하는, 1958년 미의회에서 결의한 '인도적인 도살에 관한 법령'(the Humane Slaughter Act)에도 위배되는 것이다. 2001년 4월, 워싱턴 포스트지(the Washington Post) 에서는 '그들은 죽어간다, 한 조각 한 조각씩' (They Die, Piece By Piece) 이라는 제목으로 두 차례에 나누어서 불법도살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공포에 대하여 강력하게 폭로하는 기사를 실었다.

2000년 10월 동물권리운동가들의 압력에 의해 미농무부는 처음으로 생의학 규정에 쥐와 새를 포함시키는 것으로 그 범위를 확대시키는데 동의했으나 생체해부산업측에서 강력하게 이의를 제기하고 있어 여전히 심리중에 있다.

동시에 유럽 의회는 2012년까지 베터리 케이지 사용을 중단하겠다고 공언했다. –끝없이 늘어서 있는 비좁은 케이지의 사용은 달걀생산을 최대한 착취하기 위해서이다. (왼쪽의 사진 참고)

2001년 10월에는 미상원에 2001년의 농장안전에 대한 규정에 따라서 동물보호에 대한 4가지 수정안이 하원에 통과되었고 그에 따라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이 수정안들은 –상원의원들의 표를 기다리고 있다.- 이 수정안에는 병이나 부상으로 걸을 수 없는 동물들을 운송하거나 파는 것은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국의 여러 주들 사이에서 이뤄지고 있는 싸움을 위한 조류의 선적에 대해서는 그러한 행동이 불법인 주들에서부터 뉴멕시코를 포함하여 그러한 일이 여전히 합법인 주들에까지 행해지고 있다는 허점을 봉쇄하는 것과; 싸움을 위한 조류와 투견의 수출금지, 그리고 동물복지를 위한 규정사항을 위반했을시의 벌금을 증가시켰고, 인도적 도살 규정을 좀더 강화시킬것 등을 포함하고 있다.

2001년 7월 상원의원인 죠셉 바이어드는 국회연단에서 모든 동물들은 인간들의 학대로부터 보호받을 가치가 있음을 알리는 그 전례가 없었던 열정적인 연설을 했다

그가 강한 어조로 “가축에 대한 우리의 비인도적인 처우”를 비난하자 상원에서는 동물의 고통을 경감시키기 위한 연구 방법과 인도적인 도살법의 시행을 추진하기 위해 미농무성에 3백만 달러를 지원할 것을 승인했다.

미국 인류애 협회의 부대표인 웨인 페슬은 “어떠한 상원의원도 지금까지 이처럼 국회에서 주목받았던 적이 없었고 어느 누구도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이런 발언을 했던 적이 없었다.” 고 말했다.

이러한 것들은 더 이상 동물을 인간을 위해 이용당하는 감각이 없고 말 못하는 짐승으로 바라보는 관점이 아니라 동물을 도덕적으로 중요한 이익을 지니고 생각하고 느끼는 생명체로 바라보는 관점으로 바뀌어가는 패러다임의 몇몇 지표들에 불과하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여전히 동물들에게 가해지는 갖가지 천박한 형태의 폭력들을 중지시키기 위해 걸어야할 머나먼 길이 놓여있다.

써커스, 로데오, 동물원, 사냥, 생체해부 그리고 도살장과 같은 혐오스러운 것들은 여전히 존속한다.

미국에서만 매년 4천만 마리의 동물들이 덫에 걸리고 가스에 중독되고 매를 맞고 모피 때문에 전기로 인해 죽음을 맞는다. 1억마리에 달하는 동물들은 실험실에서, 10억에 가까운 동물들은 육류소비 때문에 죽는다.

동물에 대한 인간의 무지와 둔감함은 가까운 미래에 없어지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고대로부터 내려온 동물에 대한 편견들이 지속되는 대립적이고 불공평한 상황에서 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와 도덕적 진보에 대한 증거는 분명히 있다.

가장 중요한 몇 가지 변화의 증거들은 축산농장 동물들에 대한 처우와 관련이 있다.

2000년 8월 맥도날드는 자사에 연간 15억개의 달걀을 공급하는 업체들에게 암탉들을 좀더 인도적인 방법으로 다루고, 사육에 있어서 보다 엄격한 새로운 규정을 마련토록 하라고 전했다.

그 지침에는 각각의 케이지를 50%넓히고, 달걀생산을 자극하기 위해서 물과 사료의 공급을 중단하는 ‘강제몰팅’의 금지와 베터리 케이지 안에 빽빽하게 들어찬 어린 병아리들이 서로를 쪼아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부리를 절단하는 야만적인 ‘부리자르기’의 중지가 포함되었다.

더 나아가서 맥도날드는 달걀생산업체들이 이러한 약속을 이행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감사를 행하겠다고 말했다.

같은 해에 달걀 생산자 연합은 강제 몰팅을 그만두겠다고 알렸다 – 거의 2주 동안 암탉들을 굶주리게 하는 이러한 행위는 닭들의 산란주기를 교란시킨다 - 그리고 ‘미국 인류애 협회’ 는 AHA 복지 기준을 준수하는 회사들을 선정하여 수상하는 자유로운 농장경영 자격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2001년 맥도날드의 주도로 곧이어 버거킹과 웬디스도 산란닭들을 위해서 더 넓은 케이지를 사용하고 강제몰팅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페타의 힘

눈치가 빠른 사람이라면 맥도날드와 버거킹 그리고 웬디스사가 자발적으로 이러한 변화를 시도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그들의 대외적 이미지를 손상받지 않기 위해서 발버둥치고 비명을 지르며 억지로 협상 테이블로 끌려 나와 양보한 것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것이다.

특히 페타는 3개의 거대 패스트푸드사에게 그 회사들의 공급업체에서 벌어지는 비양심적인 관행을 개선시키라는 압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수많은 페타의 캠페인들은 보도기관과 동물권단체 모두에게 대중적이지 못했던 반면에 – 그들의 “got beer? 와 “eat the whale” 와 같은 큰 실수처럼 – 패스트푸드 체인점들에 대한 페타의 최근의 분명한 공격들에서 알 수 있듯 페타가 자주 강도높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동물권을 수호하고 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 3개의 거대회사들을 상대로 한 페타의 캠페인은 맥도날드의 최고경영자에게 농장동물에 대한 획기적인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편지를 보냄으로써 시작되었다.

페타의 공격은 맥도날드가 잔인한 방법으로 구이용영계와 산란용 닭 그리고 돼지들을 사육하는 방법이 ‘비난받을 만한 책임’ 이라는 판결을 받았던 유명한 맥라이벌 재판이 열렸던 영국 고등법원의 로저 벨 판사의 8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의 판결문에서 최대한 기초로 하여 이뤄진 것이다.

(http://www.mcspotlight.org/case/index.html 을 참고)

맥도날드를 위해 사육된 동물들에게 가해진 잔혹행위는 –현대식 축산 농장과 도살장에 대한 실행기준 – 포함하는 내용: 닭들은 불결한 축사내부에서 도살자들에 의해 심각한 부상을 입거나 다리가 부러진채로 마리당 종이 한 장 보다 더 좁은 공간의 케이지 속으로 구겨넣어진다. ; 돼지들은 몸을 돌릴 수조차 없는 비좁은 시멘트 우리 속에서 길러진다. ; 그리고 도살장에서는 적어도 20마리당 1마리의 동물들이 제대로 기절시키지 않아서 완전히 의식이 깨어있는 상태에서 사지가 절단 당한다.

레이 크락의 ‘궁지에 몰린 악의 제국’ 이것으로 페타는 주도권을 잡았고 맥도날드에게 그들의 축산동물의 처우를 크게 향상시키라고 요구하기 시작했다.

페타는 맥도날드에 다음과 같이 요구했다.

1. 미농무성이 권고한 최소한의 기준에 따라 닭들에게 1피트에서 1피트 반 스퀘어 해당하는 공간을 제공할 것

2. 공장식 축산 방법으로 생산된 달걀의 판매중지

3. 닭들의 수송과 도살 방법에 대한 향상된 기준 요구

4. 유전적으로 변형되어 하체 기형으로 고통받는 조류사용 중단

5. 비좁은 시멘트 우리 안에 가두지 않은 농장의 돼지들만 구입하고, 좁은 시멘트 우리 안에 가두어 두지 않은 번식용 암퇘지들이 밖으로 드나들수 있는 축사를 사용하는 농장의 돼지를 구입할 것.

6. 부리잘린 닭을 공급하는 업체와의 거래 중단

7. 도살전에 동물을 적절하게 기절시킬 것을 보장

8. 식품화되는 과정에 있어서 심각한 부상을 입은 채로 도살장에 온 동물들은 사체더미에 던지지 말고 도살장에서 진정제를 투여한 후 안락사 시킬 것

9. 미국의 모든 맥도날드 체인점에 채식주의자를 위한 버거를 포함시킬 것

그 힘들었던 2년의 시간동안 페타는 맥도날드의 주주총회에 참석했었고 전화와 편지를 통해 맥도날드와 꾸준히 협상을 벌여왔었다.

페타는 또한 공장식 농장동물의 고통을 줄이는데 있어서 전문가로 알려진 탬플 그랜딘 박사와도 함께 일을 했는데, 그녀는 맥도날드의 공급업체들이 동물의 도살공정의 속도를 줄이고 도살 전 확실하게 동물들을 기절시키기 위해서 도축회사 한 곳당 두 명의 스터너(소를 기절시키는 전문가)를 고용하고 공급업체들의 불투명한 감사를 확실히 해야 한다고 제안했었다.

페타는 맥도날드가 동물의 복지를 위해 솔선수범하는 선구적인 회사가 될 모든 기회를 제공했었지만 맥도날드는 이에 어떠한 응답도 하지 않았고, 맥도날드가 오로지 대외적인 관계만을 의식한다는 것을 알아차린 후, 페타는 1999년 8월 12일 그 회사에 대한 전면적이고 맹렬한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페타는 23개국의 300개 이상의 도시에서 400여 차례에 걸쳐 시위를 벌였다. 그들이 배포했던 전단지와 포스터, 그리고 스티커에는 도살당한 동물들의 생생한 사진들과 맥도날드의 슬로건을 비꼰 패러디 문구 “Animals Deserve a Break Today ”와 “ McDonals, Cruelty to go” 가 적혀있었다.

특히 도발적이었던 것은 전세계의 학교로 페타가 내놓았던 ‘언해피밀’ 이었다.- 화려한 점심 상자의 포장지에는 어떻게 동물들이 사육되어지고 도살되는지에 대한 정보가 담겨있었다.

페타는 맥도날드가 총360억 달러의 이윤을 남기면서 ‘인도적인 도살법’을 지키지 않고 동물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충분히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음을 더욱 명백히 알렸다.

2000년 6월 페타는 맥도날드가 축우들을 기절시키는 것과 닭들을 다루는 방법이 미약하나마 개선되었고 이를 확인하기 위한 감사가 이루어졌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여전히 페타가 요구했었던 것들과 벨 재판장의 비판에 의해 제기되었던 대부분의 문제점들은 언급되지 않았다.

그러나 2000년 8월에 맥도날드는 마리당 72인치 스퀘어 보다 좁은 공간에서 부리잘린 닭을 사육하면서 달걀생산을 증대시키기 위해 강제몰팅을 시행하는 공급업체들에게서 가금류를 사들이지 않겠다고 동의했다.

페타는 肩??조치들로 박수갈채를 받았지만 보다 많은 개혁을 이루기 위해 꾸준히 대항했고 그들의 캠페인도 계속되었다.

결국 2000년 9월 맥도날드는 더욱 근본적인 개혁을 실시하겠다고 공식 선언했다.; 맥도날드는 업체들에게 산란닭들의 케이지의 크기를 넓히고 부리자르기와 강제몰팅을 중단하고 닭을 인도적인 방법으로 다루라고 요구했다.

또한 도살장들을 감사하기 시작했으며 ‘인도적 도살’ 기준에 따르지 않는 도축자들과의 거래를 끊었다. 마침내 페타는 맥도날드를 향한 모든 항의를 2년 동안 일시적으로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들에게 이러한 절차를 밟아나갈 것을 요구하는 동안 페타는 훨씬 더 많은 것들이 행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이 번식용 돼지를 가두어 기르는 농장에서 돼지를 구입할 것을 거절하거나, 도살방법을 개선시킨다거나 도살장 감사를 한층 강화시키는 것과 같은 부가적인 개혁들에 대한 초안을 마련했었다.

만일 이러한 그들의 요구가 2000년 9월 1일까지 이뤄지지 않는다면 언해피밀을 포함하여 페타의 모든 캠페인을 새로이 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맥도날드와의 싸움에서 승리를 선언한 후 다음의 페타는 맥도날드가 새로이 정립하고 있던 산업 방침들의 초점을 버거킹과 웬디스에게로 맞추었다.

그들은 두 회사에 맥도날드에게 했던 대로 똑같이 요구했고 그것과 같은 결과를 이끌어냈다.

중요한 것은 버거킹과 웬디스도 그들의 공급업체들을 감시하고 합법적인 규정을 어기는 업체들과는 거래를 중단할 것에 동의했다는 것이다.

각각의 캠페인의 목적을 깨닫는데 시간과 노력이 덜 들게 됨에 따라 페타가 식품산업부분의 개혁에 있어서 중요한 수단이며 평가하는 압력 집단이 되어왔음이 분명해졌다.

그들은 현재 맥도날드가 그들의 미국기준이 국제화 되도록, 그리고 맥도날드로 하여금 그들의 다음 목표를 선점하도록 격려하고 있다. 그것은 아마도 월마트와 알버트슨과 같은 주요 업체들 뿐만 아니라 치킨과 피자 아울렛 같은 페스트푸드 체인점을 포함하게 될 것이다.

승리인가 배신인가

거대한 패스트푸드 3사에 대항하는 3개의 캠페인이 성공적으로 끝난 후, 페타는 농장동물들이 사육과 취급 및 운송, 도살의 방법에서 좀더 향상된 개선을 이끌어냈음을 알리는 승리를 선언했다. 그것은 그들 자신의 의지와 양심에 맞춰서 변화를 이끌어냈다는 것과 페타가 그들의 결정에 있어서 어떠한 역할도 하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페타가 그 회사에 보낸 편지들이 그러한 성공을 이끄는데 주도적인 입장에 있었음을 알리는 증거이다. 그리고 페타가 지속적인 압력과 대중적이고 악몽 같은 비방 광고로 맥도날드를 괴롭히지 않았다면 그들 중 누구도 개선을 하지 않으려 했을거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어떠한 다른 동물권 단체들도 그러한 변화에 있어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았었다.

페타에 의해서 이루어진 승리는 향상된 동물복지를 옹호하는 집단과 동물을 착취하는 산업들의 폐지를 요구하는 동물권리단체 사이에 있었던, 그리고 동물권 단체 내부에서도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논쟁에 다시 불을 지폈다.

그렇다면 도대체 페타가 그들을(맥도날드를 비롯한 패스트푸스사) 문닫게 하는 대신 동물들의 사육과 도살 방법을 개선하도록 돕고 있는 동안, 세계의 지도적인 동물권 단체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라고 혹자는 물을 지도 모른다.

더 넓은 케이지를 요구하는 대신 케이지를 없애는 것이 목적이 아닌가?

페타는 그들의 비평가들이 주장해온 것처럼 동물의 권리의 본질을 배신해온 “배신자” “중상가” 그리고 치사한 개혁가는 아닌가? 아니면 페타는 동물해방과 완전한 채식주의 세계라는 멀고도 실현이 불가능할수도 있는 목표 때문에 동물의 고통을 줄이기 위한 즉각적인 개혁을 가로막고 있는 원리주의의 포로들인 냉담한 순수주의자들의 반대자들인가?

페타는 육식을 하는 대중들이 가지고 있는 약간의 죄의식을 줄여주면서 육식산업과 육식에 승인의 도장을 찍어줌으로써 합법화 해왔는가, 아니면 다른 어떤 조직들도 아직도 실현해 내지 못했던 소득을 얻어냈는가?

1975년 동물해방이 출판된 이래로 그 책의 저자 피터 싱어가 말했듯이 캠페인은 미국에서의 농장동물을 향한 가장 진보적인 발걸음이라기 보다는 동물권리자들의 동료들이 주장하는 대로 페타는 그저 주요한 공동의 착취집단을 위한 조직적인 뚜쟁이들 이었던것 밖에 안되가?

다른 식으로 말한다면, “우리는 동물 복지인가 동물권리인가, 아니면 개혁인가 혁명인가를 놓고 싸우고 있는 것인가?”

국제적인 동물권들의 행동가들에 의하면 “동물복지론자들은 모든 곳에 있는 동물들의 적이다” 그리고 “새로운 복지론자들은 우리의 문화속에서 동물학대를 정착시키고 있다” 이러한 종류의 단순한 사고방식에 반대하여 나는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복지와 권리, 그리고 개선과 혁명이라는 대립은 옳지 않다. 그리고 그러한 양립할 수 없는 용어들 속에 틀 지워진 논쟁들은 무력화 되어가고 있음을 나는 시사한다.

개선을 위한 계획을 포기한다는 것은 결코 실현될 수 없을지도 霽4?완전 동물해방 이라는 불투명한 유토피아적 미래를 향해서 우리가 더딘 진전을 해나가는 동안에도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있는 농장동물들에게서 등을 돌리는 행위와 같다.

동물해방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개선을 비난하는 순수주의자들은 그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어떠한 대안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리고 우리의 과제는 개선이나 해방을 위해 배타적으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동물을 착취하는 모든 산업, 그 중에서도 특히 식품산업을 종식시키려는 이러한 두 개의 목적들을 어떻게 화해 시키는가이다.

동물복지와 동물권리

인류가 동물의 고통에 관심을 기울여오는 동안, 인류는 동물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서 노력했으며 동물복지철학은 우리 문화의 한 부분이 되어오고 있다.

이러한 관심들은 동물을 향한 부분적이고 얼마간이 무관심한 서양의 전통과 고대동양의 종교의 윤리적 핵심들과 뒤섞인다.

동물권리라는 개념은 처음으로 인권이라는 개념이 자리잡았던 17세기 전에는 등장하지 못했다. 그리고 20세기까지는 철학적으로 논의될만한 중심과제가 되질 못했다.

동물복지와 동물권리의 입장들은 모두 동물을 향한 인간의 잔인성과 동물에게 가해지는 불필요한 고통을 비판하면서도 동물들이 지니는 도덕적 지위를 놓고 첨예하게 대립한다.

랏처스 대학의 동물권리법의 권위자이며 동물권리입문의 저자인 게리 프랜시온은 복지와 권리라는 철학들 사이에서 그 차이점에 대한 적절한 토론을 제안한다.

프랜시온의 말을 빌리면 동물복지론자들은 동물들도 이익을 지니고 있음을 인정하지만 만일 인간의 이익이 위태로울 만큼 동물들에게 과도하다 할 정도의 이익이 부여된다면 동물들은 희생되거나 교환처분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유별난 복지론자들에 의하면 동물들의 이익은 너무나 많은 이유들로 인해 짓밟히며 육류소비와 생체해부를 위해, 또는 서커스, 로데오, 투우, 투계 그 밖의 인간들의 오락을 위해 제한된다고 한다.

복지론자들은 동물들이 불필요한 고통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동물들에게 가해지는 행위는 어떠한 형태든지 간에 인간적으로 행해져야 한다고 믿는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동물권리론자들은, 보다 큰 효용성과 중대성을 위해서라면 동물들의 희생을 허용한다는 동물복지론자들의 공리주의적 전제를 거부한다.

예를 들어 비록 의학적 지식에 있어서의 진보에서 볼 수 있는 훌륭하고 중대한 결과를 가져올수 있다 하더라도 권리론자들의 견해에 따른다면 동물들의 이익은 희생되어선 안된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그 ‘거대한 미덕’을 위해서 인간 개개인이 희생된다면 이는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고 믿듯이, 동물권리론자들은 마친가지로 동물들에게도 그들의 이론을 설득력있게 적용시킨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권리적 접근은 동물들을 (의식이 있고 감정이 있고 사고를 하는 인간들과 혼동하지 않으면서) 개체들로 취급한다는 점이다.

사실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형태의 착취로부터 동물을 해방시키고자 할 때, 재산으로 간주되는 동물들의 지위와 더불어 소유자들이 이에 대해서 행사하는 합법적인 권리가 가장 커다란 장벽으로 작용한다. 그러한 이유로 만일 내가 어떤 가학성 변태성욕자인 과학자의 실험실에서 동물들을 해방시킨다면 그 과학자가 아닌 내가 그의 ‘재산’을 ‘훔친’ 죄로 감옥에 가게 된다.

미국의 공장식 농장과 도살장에서 고통받고 죽어가는 100억의 동물들은 그들의 고통으로 이윤을 얻는 사악한 산업체들의 재산이므로 형용할 수 없는 잔혹행위들을 견딘다.

프랜시온 교수가 주장하듯 동물들의 삶에서 복지론에서 권리론으로의 이동과 함께 동물을 소유물로서 예속시키는 법적 장치의 폐지가 궁극적으로 동물들을 보호한다. (복지논쟁을 통해서) 비록 우리가 동물들의 이익에 대해 점차 관심과 애정을 키워간다 할지라도 인간의 소유권은 강력한 정당성 없이는 폐지되지 않는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동물들이 소유자들의 재산으로 간주되고 있는한, 고유의 이익을 지닌 공급품으로 간주될 수 있는 동물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예를 들어 비록 실험실의 동물들을 편하게 살도록 해준다 할지라도 과학자들과 대학들이 그 동물들을 실험동물용번실업체로부터 구입했으므로 실제로는 ‘소유’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면 그러한 주장이 정당하다고 인정하기엔 현재로서는 매우 어렵다.

프랜시온은 그러한 동물권리는 개혁과 완전히 양립하거나 전혀 양립할 수 없음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모든 것은 어떻게 우리가 개혁을 규정짓고 권리와 해방의 궁극적 목표들과 동물들을 관련짓는가에 달려있다.

동물착취를 지지하면서 도덕적, 정치적, 경제적으로 부패한 거대조직이라는 평화롭고 합법적인 수단들을 없애도록 하는가, 아니면 동물 권리에 계속해서 다가가야 하는가 라는 문제들 사이에서 몇 가지 접근들은 논쟁의 여지가 있는 민감한 미봉책을 제안한다.

동물권리의 목적을 약화시키기 위함이 아닌 강화를 위한 개혁의 방법으로서 프랜시온은 입법화되어야 할 최소한의 4가지의 조항들을 정립한다.

(1) ‘보다 인간적인’ 기준으로 동물들의 처우개선을 하기보다는 착취의 특수한 형태를 없애거나 금지해야만 한다.

(2) 공리주의적 이유들로 동물들의 이익이 교환되거나 희생되는 것을 거부해야 한다.

(3) 그러므로 동물생명의 고유한 가치에 대한 개념으로 알려져야 하며, 재산의 목적이 아닌 생명의 주체로서 인정받지 못함을 거부한다. 그리고,

(4) 모든 동물들을 향한 착취를 없애도록 하는 요구가 수반되어야만 한다.

프랜시온은 의학적 화상실험에 사용되는 동물들의 수를 감소시킨 개혁을 평가하기를 거부하겠지만, 화상실험에 동물들이 사용되는 것을 효과적으로 방지할 수 있도록 국회법으로 지원자금을 중지하게끔 하는 일은 흔쾌히 받아들일지도 모른다.

이 법은 모든 형태의 착취로부터 동물들을 해방시킨다는 그 목적 자체로 부터가 아닌, 이러한 특수한 사례에서 착취되는 집단의 미약한 개선을 훨씬 뛰어넘어 실효된다. 마찬가지로 프랜시온은 6마리에서 2마리로 베터리 케이지안의 산란닭의 수를 감소시키라는 요구를 지지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베터리 케이지 조직체계를 폐지하기 위한 투쟁이나 혹은 재산으로서의 닭이라는 개념에 대한 의문이 없는 좀더 ‘인간적인’ 대우를 수반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페타가 거대 패스트푸드사들을 대상으로 삼았던 캠페인을 그저 개량된 조치라는 그의 견해로 비추어 볼 때, 그가 이를 지지하지 않을 것임은 분명하다.

페타의 캠페인은 (1)과 (2)의 조항에 부합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타가 동물들이 고유한 가치를 지닌다는 사실을 항상 옹호해왔듯이, (3)과 (4)의 조항대로 이행해왔음 (그들의 유명한 포스터와 차량용 스티커에는 “동물들은 우리가 먹고 입기 위해서, 혹은 실험용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라는 문구가 있다.) 과 더불어 동물들이 인간의 재산이라는 개념을 거부했다는 사실은 주목할만하다.

(http://www.peta.org/mall/cc.htmlhttp://www.veganstore.com/index.html를 참고)

장기적 안목이 결여된 미온적인 복지 단체나 급진적이고 타협하지 않는 동물권리단체가 되기보다는, 페타는 동물권리 철학, 채식주의, 동물이 이용되지 않은 제품들의 생산을 위한 전진을 계속하면서 생체해부, 써커스와 로데오, 그밖의 동물학대와 관계된 기관들의 철폐를 이끄는 두 가지 방식의 전략을 취한다.

혁명은 진보를 통해서, 진보는 혁명을 통해서

동물해방은 분명히 장기간의 투쟁이다. ; 그러는 사이에 가능한 한 많은 동물들의 삶을 개선시켜야 함은 필연적이다. 동시에 프랜시온의 경고에 귀를 기울여 우리가 오로지 예속과 착취의 기관들의 개선과 그를 통해 동물들의 인도적 처우를 합법화하는 늪에 빠져서는 안되며 우리는 궁극적으로 그러한 것들을 폐지하는데 몰두해야 한다.

미약한 복지론자들의 근거로 비추어 볼 때, 우리는 현재 자행되는 케이지 안에서 고통받는 동물들을 위한 전투에서 약간의 승리를 거두었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동물들의 해방이라는 더 넓은 의미의 전쟁에서는 지고 있다.

장기적 안목에서 볼 때 페타가 오로지 개혁만을 받아들이거나 육류산업에 더 이상 압력을 행사할 수 없는 막다른 곳으로 되돌아간다면 캠페인은 실패할 것이고, 이런 식으로 그들은 사실상 동물 착취에 공범이 된다. 그러나 페타는 그 3개의 거대회사를 감시하고 있고 다시 항의를 계속할 것이며 그들이 요구의 수위를 지속적으로 높여나가길 나는 기대한다.

문제는 개혁이 아니라 본래 동물해방을 종결하기 위한 매개로서의 개혁을 끝내야 한다는 사실이다. 만일 우리가 동물해방과 더불어 생체해부, 공장식 농장, 도살장, 동물오락산업과 그 밖의 것들의 폐지가 우리의 궁극적 목표임을 지속적으로도 분명하게 인식한다면, 우리는 직면한 개혁을 이루어 내면서 근본적인 원인들을 바꾸는 일이 가능하다.

순수주의라는 장애물은 무력감과 절망감으로 인도하지만, 우리가 성취가능한 개혁들을 이루어냈듯, 우리는 동물운동을 강화해나가고 장기간의 목표를 향한 투쟁을 지속시킬수 있는 근원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프랜시온의 강령들은 개혁과 혁명사이, 복지와 권리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하지만 어느 상황에서는 지나치게 엄격할지도 모른다. 육류와 식품산업은 너무나 넓고 너무나 확고하게 고착되어 있어서 동물들이 받는 고통은 우리가 강화된 전략만으로 보장하기에는 너무도 극심하기 때문이다. ‘인도적 도살’이 우습게 들릴지는 모르지만 동물들이 완전히 깨어서 의식이 있는채 사지가 절단되거나 삶아져서는 안된다.

‘더 넓은 케이지’에 대한 요구는 반동적이고 공범자로 보일지도 모르나 닭들이 철망 우리속에 구겨넣어져서는 안된다. 만일 미국인들이 앞으로도 계속해서 채식버거를 구입하여 동물과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을 줄일 수 있다면 식당과 맥도날드와 같은 패스트푸드점에서의 채식버거 판매는 분별력 없는 행동이 아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보다 중요한 업적은 프랜시온의 강령대로 이행해왔다는 점인데, 구체적으로 강제몰팅의 금지와 곧 희망적으로 이루어질 부리자르기 금지이다.

곧 이루어 낼수 있는 수확들을 뛰어 넘어서, 페타의 캠페인은 예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공장식 농장과 도살장에서 벌어지는 잔혹함으로 관심의 초점을 맞추는데 노력했다.

페타와 다른 단체들은 전례가 없었던 업적을 이루어왔다.

‘가금류관심협회(United Poultry Concerns)는 도살장 관계자와 그 환경에 반대하면서 “ 처음으로 (농장)동물들의 문제의 심각성이 제기되었다” 고 말했다. 이것은 실로 의미 있는 첫걸음이며 순수주의자들의 견해로도 과소평가 되지 않는다.

사람들이 육식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도록 하기보다는 그들이 배웠던 바에 의해 몸서리치며 – 페타와 다른 국제단체들은 그들의 채식교육캠페인을 통해 지속적으로 확산시키고 있다 – 그들이 육류섭취를 전혀하지 않거나 줄인다.

최종적으로는 아래로부터, 즉 계몽된 소비자들에 의해서 성장해가는 운동으로 변화되어야만 한다. 그렇지만 소비자와 육류생산업자를 변화시키기 위한 튜쟁은 현재 하나가 되어 있다.

** 스티브 베스트는 앨파소에 있는 택사스 대학의 ‘철학과 인성의 교수연합’ 에 있다.

그는 앨파소의 채식주의자협회의 부회장이면서 오랜기간 동안 채식주의자이며 동물권리운동가이고 사회이론, 포스트모던이즘과 문화학 방면에서 수많은 책과 논설들을 쓴 저자이기도 하다. 그의 저술들 중 일부는 http://utminers.utep.edu/best/ 에 게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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