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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과 살육/황윤감독
동보연 2007-09-09 15:56:48

-독립영화 감독 황윤

하퍼스 바자 2월호에 기고했던 글입니다.
이 글을 쓸 때 아래 Peta 동영상을 알았더라면, 동영상 주소를 함께 적었을텐데...

<패션과 살육>

모피반대에 관한 글을 하퍼스 바자로부터 청탁받고 나는 며칠 동안 망설였다. 모피 제품을 선전하고 알리는 잡지사에서 모피를 반대하는 글을 싣겠다니 무슨 의도인가?

다른 패션잡지들이 그러하듯, 바자는 모피 제품을 소개하는데 소극적이지 않으며, 모피 제품을 입은 모델과 유명 배우들의 사진을 위해 지면의 많은 부분을 할애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기에 원고 청탁 전화를 받고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모피에 대한 바자의 입장을 좀 더 알고 싶어서 조금 전 바자의 홈페이지에 가 보았다. 영화 시상식장에 등장한 염정아, 수애, 전도연, 김민선 등 유명 배우들이 한결같이 모피 제품을 목에 두르고 있는 사진을 볼 수 있었고, 바자는 그들을 “이달의 베스트 드레서” 로 선정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시상식에서의 베스트 엑세서리는 퍼 스톨(Fur Stawl)” 이라는 설명이 사진 옆에 곁들여져 있었고, 이달의 주요 패션을 소개하는 ‘fashion news'란은 “밍크 스톨은 니트나 카디건, 원피스와 함께 스타일링하면 멋진 파티 룩으로도 손색없는 실용적인 아이템이다.” 라고 권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모피를 반대하는 글을 실음으로써 바자가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과연 진정한 자기반성이라고 할 수 있을까? 모피패션의 전령사이기를 포기하지 않으면서 다른 한편으로 모피반대의 글을 싣는 상반되는 행동 속에서 바자의 “자기반성”이 가능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진정한 자기반성은 모피패션의 광고와 소개를 멈추거나 획기적으로 줄여나갈 때만이 가능하다.

나는 우선 몇 가지 숫자를 적어보고자 한다. 0.5, 25만분의 1, 그리고 7. 이 숫자들은 무엇을 의미할까?

“0.5㎥”는 모피를 위해 사육되는 여우 한 마리에게 주어지는 공간이다. 가로 세로 높이가 각각 1미터인 작은 상자가 있다고 할 때, 이것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공간으로서, 야생 여우의 활동 공간에 비해 “25만분의 1”에 지나지 않는 비좁은 면적이다.

드넓은 들판을 달리며 서식하는 여우는 모피를 위해 도살될 때까지 농장의 좁고 어두운 우리에 갇혀 평균 “7년”이라는 시간을 보내야 한다.

여우가 먹는 먹이의 7%는 일년 전에 껍질이 벗겨진 다른 모피동물의 사체이다. 여우가 도살될 때는 전기충격, 가스질식, 목 부러뜨리기 등의 방법이 동원된다.

전깃줄이 여우의 입과 직장에 집어넣어지고 스위치가 올려진다. 가죽이 벗겨진 여우의 몸에서는 붉은 실핏줄이 몇 천 갈래 드러나 피가 솟구친다. 밍크의 경우에는 한 벌의 밍크코트를 위해 50여 마리에서 400여 마리가 희생된다.

또 다른 숫자들. 1999년 12월 한 달 간 L 백화점에서는 46억 3천 7백만원어치의 모피 의류가 팔렸으며 관세청에 무역통계연보에 따르면 같은 해 한국으로 들어온 모피 수입량은 1천6백60억원에 달하고 수출량도 3백 10억원이 넘는다. 한국은 모피제품 최대 생산국이자 최대 소비국이다.

모스크바처럼 춥지도 않고, 지구온난화 때문에 갈수록 점점 따뜻해지는 겨울을 맞고 있으며, 지하철이든 시내 어느 건물이든 지나칠 정도로 난방이 잘 된, 그리고 값싸고 따뜻한 옷이 지천에 널린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이처럼 많은 모피 제품이 소비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모피야말로 인간의 가장 오래된 ‘옷’ 일는지도 모른다. 목화를 재배해 면직 옷을 만들어 입는 방법을 알기 훨씬 오래 전. 그러니까 옛날, 옛날 우리의 선조들은 다른 동물의 가죽과 털을 몸에 걸침으로써 추위를 피하지 않았던가.

그렇지만 선사시대로부터 많은 세월이 흘렀고 이제 우리는 굳이 다른 동물을 죽여서 그 털을 몸에 걸치지 않더라도 추위를 피할 수 있는 수많은 방법들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모피 제품이 이처럼 많이 소비되는 이유는 “추워서” 가 아니라 두말할 것 없이 “패션” 때문이다.

욕망(passion)과 발음도 비슷한 패션(fashion)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나는 생각해 본다. 아름다운 옷과 장신구로 몸을 가꾸고자 하는 욕망은 어쩌면 인간의 본능과도 같을 것이다.

비싸지 않더라도 자신만의 스타일을 살려 멋지게 잘 차려입은 사람의 모습은 그 자체로 예술이기도 하다. 그러나 모피의 유행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0.5㎥의 공간에 7년을 갇혀 살다가 전기 충격과 목 부러뜨리기로 죽임을 당한 여우의 털을 목에 두르는 행위는 과연 어떤 욕망(passion)을 만족시키기 위함인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생명들의 고통과 죽음을 전제로 한 욕망이 아름다운 것으로 여겨지는 패션(fashion)은 과연 무엇을 향한 것인가?

나에게는 표범무늬 인조모피 코트가 있다. 십 년 전 신촌의 어느 거리를 지나다가 나는 마네킹에 걸린 이 옷을 보았다. 그 옷을 사고 싶은 욕망을 억누를 길이 없어 나는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거금” 13만원을 주고 그 옷을 덜컥 사 버렸다.

그리고 만족스럽게 그 옷을 입고 다녔고 그 옷을 입고 싶어서 겨울이 오기만을 기다리기도 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그 옷은 내 옷장 속에 얌전히 걸린 채 겨울바람을 쏘이지 못하고 있다. 주인이 변덕이 나서 그 옷이 싫어졌기 때문이 아니다.

인조 모피이기는 하지만 그 옷은 정말 따뜻하고 털은 부드러우며 표범 무늬는 여전히 매력적이다. 내가 이 인조모피 코트를 입고 나가고 싶은 욕망을 억누르게 된 것은, 표범이라는 동물이 아프리카가 아닌 한국 땅에도 20세기까지 매우 많이 살았다는 사실, 그런데 아름다운 털 때문에 남획과 밀렵의 대상이 되어 아무르 표범 그러니까 한국 표범이 지구상에 30여 마리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부터이다.

진짜 표범 모피가 아닌 누가 봐도 가짜인 것이 분명한 싸구려 인조 모피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 코트를 입지 않는 이유는, 만의 하나라도 누군가 내 옷을 보고 “진짜 표범 모피”를 입어보고 싶다는 욕망을 갖게 될까봐서이다.

표범뿐 아니라, 여우, 늑대, 호랑이, 담비 등 백두대간을 활보하던 수많은 야생동물들이 “아름다운 털을 가졌기 때문에” 한국 땅에서 절멸했고 절멸 위기에 몰렸다.

사육되는 동물들에게는 끔찍한 고통을 그리고 야생의 동물들에게는 멸종을 안겨주는 것이 바로 모피 패션의 진실이다.

어차피 만들어지는 모피이기 때문에 소비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것은 마치 ‘어차피 만들어진 핵무기이기 때문에 터뜨릴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소비가 있기 때문에 생산이 계속되는 것이 아닐까? 바자가 모피반대의 글을 싣는 것도 좋은 시도이다.

하지만 모피 패션 이면에 감춰진 동물들의 고통과 멸종을 공감한다면 모피 패션 대신 에콜로지 패션, 즉 생태계를 배려한 패션을 주도해 나가기를 바란다.

외국에서 이미 70년대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에코 디자인은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 점점 더 중요한 테마가 될 전망이다. 천연 직물에 그려진 숲과 물, 하늘, 사막...... 동물들의 피와 눈물을 목에 두르지 않더라도 창조할 수 있는 아름다움은 무한히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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