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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권리와 복지의 이해/김진석교수
동보연 2011-12-30 21:29:41

동물권리 (Animal Right)와 복지 (Welfare)의 이해

김진석 : 건국대학교 수의과대학 수의학과

1.들어가며

동물의 권리 (動物權利 Animal Rights)에 대한 논란은 수의사들을 상당히 불편하고 걱정스럽게 만드는 논쟁거리 중에 하나이다.

일부 수의사들은 동물권리에 대한 논란은 수의 전문분야에 큰 경제적 타격을 주게 될 악재임에 틀림없다고 주장을 한다.

또 다른 수의사들은 동물권리의 개념은 자연의 질서와 과학의 발전에 대한 큰 위협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또한 동물권리하는 것이 수의사라는 전문직업의 목표나 가치와 상반되고 위험한 개념이라고 판단하고, 동물에게 "권리(Right)"라는 말을 연계시키는 일을 아예 피하려고 하는 수의사도 적지 않다.

동물권리와 수의전문직업과의 이러한 미묘한 관계를 빗대어 Amistead (1985)는 동물권리 전쟁에서 수의사들은 "십자포화 (十字砲火 crossfire)" 가운데 갇혀있는 셈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이는 한편으로는 수의사들이 처한 운명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다른 면에서는 이러한 전면적인 동물권리 논란에서 어떻게든지 재빨리 피해 나와야만, 수의사가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절박한 뜻을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불행스러운 일의 대부분은 아직까지 확실히 검증되지는 않았다.

사실 많은 동물권리운동이 인간중심적인 측면에서 보면 도덕적으로 불유쾌하고, 수의사나 환축 그리고 축주의 이해관계와 깊은 잠재적 갈등구조를 잉태하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이 미묘한 문제에 올바르게 접근하기 위하여, 무엇보다도 동물의 권리와 복지에 대한 우리들의 정확한 이해가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라고 볼 수 있다.

2.권리 (權利 Rights)란 무엇인가?

권리의 속성이 무엇이고 누가 (who), 또는 무엇 (what)을 하거나 (do),무엇을 하지 않는 (do not)것이 어떤 권리를 지니는 것인지, 그리고 왜 (why) 그것이 타당한 것인지에 대하여 철학자들 사이에 심각한 논쟁이 있어 왔다. 이러한 논란에서 권리 소유의 타당성을 입증하기에 적합한 다음과 같은 여러 가지 이론들이 있다.

1)윤리적 권리(moral right)와 법적 권리(legal right)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어떤 윤리적 권리(예를 들면 자녀들로부터 존경을 받아야 할 부모들의 권리)들은 법에 의하여 강요되지 않는다. 그리고 법은 윤리적인 측면에서 허용이 되지 않는 권리 (예를 들면 미국 남부 연방에서의 자신의 노예를 소유할 수 있었던 권리)를 권리로서 보호할 수가 있다.

법적권리는 정치적 결정의 산물이다. 만일 국가나 정부가 어떤 행위를 권리라고 공포하고, 법의 힘으로써 그 권리를 뒷받침한다면 이것은 법적 권리이다.

이와 달리, 비록 개인 또는 어느 집단의 결정이 그들의 윤리적 권리를 결정하는데 다소 관련이 있다고 해서, 대다수 또는 그 일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일부 사람들이 그것을 결정했다고 해도, 그것으로 단순히 윤리적 권리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동물이 "권리를 가지고 있는가"를 이야기할 때 윤리적 권리를 말하는 것인지 또는 법적권리를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양쪽 모두를 뜻하는 것인지를 우선 염두에 두는 것이 중요하다.

2)윤리적 권리와 법적 권리는 매우 강력한 요구가 있는가의 여부로서 구분된다.

어떤 사람이 어떤 종류의 대접을 받을 만한 윤리적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때, 이는 그를 그러한 방법으로 대함이 옳다는 것보다는 훨씬 강한 어떤 의미를 뜻한다.

예컨대, 거지가 구걸할 때에 당신이 자선을 베푸는 행위는 옳은 일일 수 있으나, 그렇다고 해서 자선행위 자체가 당신 주머니 속의 돈에 대해 걸인이 어떠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윤리적 권리"는 다른 사람의 허락을 필요로 하지는 않지만, 그 일을 우선으로 하는 것이 결국은 그 영향을 받는 모든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기보다는 더 많은 이익이 될 것이라는 이유때문에 무시되어서는 안된다는 주장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전체적인 행복이나 복지 또는 다른 사람의 권리를 고려하기 위하여, 개인의 권리는 무시해도 좋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눈사태가 났을 때 개인적인 용도로 차량을 이용하는 것이 다른 사람들의 생활에 피해를 줄 수 있거나, 도로의 제설작업을 방해할 수 있을 경우에 더 많은 사람들의 좀 더 큰 이익에 도움이 된다면, 개인의 자동차 사용에 대한 권리는 적절하게 제한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원할 때 자신의 소유물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이 개인의 "윤리적 권리"라는 말 속에는 부분적으로 지극히 중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일반적으로 개인이 원할 때 자신의 소유물을 사용하는 자유를 방해받아서는 안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권리는 권리를 지니고 있는 사람의 기본적인 이익에 뿌리를 두고 있다.

예를 들어, 자주 아이들을 때리는 소리 때문에 그 이웃이 피해를 입거나 또는 아이들을 자주 때림으로써, 그 부모가 이웃들에게 평판이 나빠지기 때문에, 아이들이 그들의 부모로부터 부당한 대접을 받지 않을 윤리적 그리고 법적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동학대는 어린이들에 대한 매우 나쁜 행위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어린이를 대신하여 어린이를 위하여 제기할 수 있는 윤리적, 법적 청원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부당한 대접을 받지 않을 권리를 아이들은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Feinberg는 다음과 같이 권리를 설명한다.

[동정심이나 예절, 자각 또는 타인에 대한 도덕상의 의무에서 파생되거나 그에 의존하지 않는 매우 가치있는 소유물. 권리는 결코 또 다른 상대에 대한 사랑이나 애정과는 관계없는 어느 한 상대에 대한 선언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악하고, 야비하며 가증스러운 사람도 다른 사람에 대한 어떠한 권리를 가지게 되며, 이러한 권리에 기초한 다른 사람들의 의무는 비록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을 미워하고 또한 그 미움이 선의에 의한 것이라 해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권리는 정의(justice)의 문제인데, 정의는 사랑이나 동정심 그리고 애정만큼 값진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것들과는 분명히 구별되는 윤리적 관념이다.

윤리적 권리뿐만 아니라, 법적 권리는 그 권리의 소유자에게 이익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전제된다.

"권리(윤리적, 법적 모두)"의 다른 본질의 속성은 권리는 권리 소유자가 직접 또는 어린아이들처럼 스스로 권리를 이해하거나, 주장할 수 없는 경우에 대신하여 이루어지는 주장이라는 점이다. 권리는 그로 인하여 이익을 얻게 되는 경우에 발생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나 어떤 존재가 이롭게 될 수 없거나 최소한 자신에게 선한 일이 되지 않는다면, 어떤 사람이나 어떤 존재에 대하여 권리를 주장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자유롭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이 이로움을 주기 때문에 말할 권리가 있는 것이다. 비록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을 권리를 지니는 것은 이것이 그들에게 좋은 일일뿐 아니라 이익이 되기 때문이며, 이 이익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법은 어린 그들을 대신하여 그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다.

그러나 Feinberg가 언급한 것처럼 "이해관계가 없는 경우, 어떤 행위를 함으로써 얻는 '이익'이나 어떤 행위를 해야 할 '목적'이 없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건물이나 동상, 바위 또는 강들과 같은 대상에 대하여 권리를 이야기하는 것이 타당하지 못한 것이 된다.

이러한 대상들은 스스로 자신의 이익을 챙길 수 없기 때문에 누군가가 대신하여 권리를 챙겨줄 수가 없는 것이다. 또한 이들은 이해관계를 가질 만한 것들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 스스로 이로움을 가질 수도 없는 것이다.

3.동물권리의 특징은 무엇인가?

동물들이 윤리적인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주장은 사람이 동물들에 관한 윤리적인 의무가 있다는 말과는 다르다.

동물을 부당하게 대우하는 것이 바로 인간을 부당하게 대우하는 것으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에 인간은 동물을 부당하게 대우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거나, 동물에게 해를 끼치는 것보다 사람이 얻는 이익이 훨씬 클 경우에 과학실험에 동물을 사용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동물들이 권리를 지니고 있다는 주장을 바탕으로 논쟁을 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동물해방 (Animal Liberation)』(역, 김성한 : 『동물해방』, 인간사랑 출판사, 1999)의 저자 Peter Singer는 동물이 식용으로나 연구에 사용되는 것을 반대하였다.

이때, 그는 동물의 사용이 이와 관련있는 모든 사람이나 동물에게 주는 이익보다는 더 큰 고통을 유발하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제시한다.

그러나, 사실 그의 책은 "동물권리운동의 대표적인 교과서"로 잘못 인식되어 있다. 하지만 그는 공리주의자이며, 사람에게만 어떠한 윤리적 권리가 있다고 믿고 있지는 않다.

동물이 윤리적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말은 사람들이 동물에게 부여하는 가치와는 상관없이 타고난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달리 표현하면, 이는 동물들도 존중되어야 할 권익을 지니고 있다는 말이다. 비록 동물들의 권익이 침해되는 것이 동물에게 주는 고통보다는 사람에게 훨씬 많은 즐거움을 준다고 해도 말이다.

1)왜 많은 사람들은 동물이 윤리적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믿는가?

비록 "권리"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는 않지만, 많은 사람들은 동물들이 윤리적 권리를 지니고 있다고 믿고 있다. 예를 들어, 윤리적으로 투견대회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비록 사람들의 투견대회에 대한 즐거움의 크기가 싸우는 개들이 겪는 고통보다 크다 해도, 이들은 투견대회가 옳다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투견대회가 나쁘다는 것은 총체적으로 볼 때 이익이 크냐, 해가 크냐는 차치하고라도 동물들이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사람의 즐거움을 위해 억지로 그러한 대접을 받는다는 것은 투견들에게는 불공평한 일이기 때문이다.

비록 그들이 불평이나 항의를 할 수 없다 해서, 어린아이나 정신지체자들의 윤리적 권리를 빼앗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동물들도 바람직하지 않은 어떤 방법으로 대우를 받아서는 안된다는 윤리적인 주장을 인간사회에서 (또는 그들을 대신하여 사회의 구성원에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분명히 이 동물들에 대한 윤리적 권리에서 기인하는 것인데, 이 권리란 사람들의 즐거움이나 돈벌이를 위하여 부당한 대접을 받지 않음을 뜻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처럼 동물권리를 요구하는 것이 경마나 투견, 육식 또는 동물실험의 금지를 용인하는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실험동물에 대한 불필요한 고통이나 가축의 고통스러운 도살 또는 애완동물에 대한 무관심과 학대를 거부한다.

사람들이 이와 같은 일을 거절하는 것은 단순히 이익과 고통을 바탕으로 한 어떤 공리주의적인 계산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동물에 대하여 매우 불공평하고 심각하게 잘못을 저지르고 있으며, 동물들의 기본적인 권리의 대부분이 심각하게 침해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일은 부도덕하다고 주장한다.

"권리"라는 용어를 동물에게 사용하는 것을 거부한다고 해서, 동물의 권리를 주장하는 극단주의자들이 그들의 견해를 바꾸거나 동물권리 확보를 위한 그들의 요구를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권리"라는 용어사용을 무조건 거부하는 것은 이 단어가 함축하고 있는 정당하고도 중요한 의미를 간과(看過)하게 되는 위험성을 내포한다.

자신의 재산을 강제로 다른 사람에게 넘기지 않아도 되는 권리와 같은 인간의 어떤 권리를 계속 신봉하기로 결심한 사람이 어떤 이유로 인하여 "권리"라는 용어사용을 포기하고 오직 인간의 "복지 (welfare)"에 관하여만 말하기로 결심하였다고 가정을 해보자.

물론 강제로 자신의 재산을 빼앗기지 않는 것이 인간복지의 한 구성요소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들은 특정한 사람들 또는 일반적인 인간성에 좋거나 이로운 것이 무엇인지와 같이 인간복지의 주요개념을 명확하게 정의하는데 큰 어려움을 직면하게 될 것이다.

또한 사람들은 자신의 재산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를 자신 혼자서 결정하는 것이 과연 선한 일인지 의문을 가지게 되고, 자신 재산의 사용방법을 다른 사람이 결정하는 것이 정당한 것이냐에 대한 논란에 휩싸이게 된다.

물론 인간의 권리와 동물의 권리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인간이 지닌 많은 윤리적 권리는 심사숙고를 거친 결정과 삶의 선택을 할 수 있는 정상적인 성인의 능력으로부터 얻어진 것이다.

인간의 이러한 수준만큼 자율적인 동물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물권리의 개념은 동물이 지니고 있는 기본적인 권리를 근거로 윤리적 기준 이하로 동물을 다루게 되는 일들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가정하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도 범할 수 없는 동물의 성질과 범위 그리고 그 토대에 관한 논쟁을 필요로 한다.

이러한 동물권리 개념에 대한 좀 더 흥미로운 증거는 동물들이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주장하는 수의사, 과학자 그리고 의사들의 의견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사람들은 동물들이 인도적인 측면에서 사용되기를 요구하는 점은 같으나, 동물권리의 개념을 사람들에 의하여 사람을 위한 목적으로는 동물을 절대로 사용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는 극단주의자들과는 다르게 취급되기를 바란다.

동물의 인도주의적인 사용에는 지지를 보내는 이들은 동물이 윤리적 권리를 가지고 있느냐에 대하여는 의문을 표시하는 동시에, 동물에게 "권리"라는 말을 쓰는 것에는 반대를 한다.

예를 들자면 세계수의사회 (World Veterniary Association;WVA)는 동물권리정책이 아닌 동물복지정책을 채용하고 있으며,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우리는 동물이 그들 스스로 존재로서의 특별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견해를 받아들일 수 없다. 우리는 동물권리를 홀로 신장시키는 것이 인간이 동물복지를 이루는데 책임을 지는 것이 오히려 동물에게 더 이로울 수 있다는 견해를 믿는다.]

이는 결정적으로 동물권리를 부인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세계수의사회 운영정책집 중 " 동물의 자유 (Frredom of Aniamals)"라고 제목을 붙인 부분에서 동물은 그들을 이용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매우 강력한 윤리적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동물에게서 아래와 같은 다섯 가지 자유를 이루는 것과 같이 어떤 보살핌을 마련하는 것이 복지를 위하여 필수적임은 인정이 된다. 응용윤리학 내의 여러 관련 이론을 수정하여 다음과 같이 기술할 수 있다.

그러니까 동물에게 아래와 같은 다섯 가지의 자유가 필요하다고 이야기된다는 것은 어떤 보살핌을 마련하는 것이 동물복지를 위하여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① 배고픔과 목마름으로부터의 자유
② 육체적인 불편함과 고통으로부터의 자유
③ 상처와 질병으로부터의 자유
④ 공포와 걱정으로부터의 자유
⑤ 필수적인 행동을 행할 수 있는 자유

이것은 어떤 측면에서 동물의 권리를 뜻한다. 세계수의사회의 보고서는 사람들이 지금까지 여러 가지 질병을 동물에게 감염시킬 수 있도록 허용해온 것을 금지하는 것을 뜻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이는 동물을 이용한 연구를 금지하는 것과 같은 일이기 때문이다.

세계수의사회에서 이야기하는 "자유"들의 특성은 동물의 생물학적인 특성을 바탕으로 동물은 기본적인 어떤 필요와 욕구를 가지고 있으며, 어떤 방법으로 동물들을 사용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동물을 정당화할 수 없는 부정적인 상태에 강제에 처하게 하지 않도록 강력하게 요구할 윤리적 권리를 가지고 있음을 말하고자 하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동물의 "자유"에 대한 이러한 언급은 동물복지의 개념을 바탕으로 한 동물권리를 위한 요구사항들이라고 볼 수 있다.

동물들이 우리들의 윤리적 고려에 큰 비중을 차지할 수 있을 정도로 기본적인 이해를 지니고 있다는 윤리적인 원칙을 받아들이는 한 우리들이 동물 "권리"와 관련된 어떤 윤리적 주장들을 "자유" 또는 다른 어떤 이름으로 부르든 부르는 용어가 과연 문제가 되겠는가? 아마도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개념을 좀 더 명확하게 하고 "권리"라는 단어의 사용을 거부하는 행위를 일관성있게 하며 이 용어들의 진정한 의미에 가깝게 접근하는 것을 도와주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2)동물권리에 대한 잘못된 반대

동물에 대한 윤리적 또는 법적권리에 대한 논쟁을 담고 있는 철학적 그리고 수의학적 문헌은 충분하나 여기에서 이러한 논란을 모두 다룬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동물권리에 대한 이러한 반대들 중 일부는 너무 빈번하게 거론이 되기 때문에 소개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1)많은 철학자들은 동물들이 성장한 사람처럼 그들의 권리를 이해하거나 주장할 수 없기 때문에 동물들에게 윤리적 또는 법적권리를 부여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반대는 동물이 윤리적 사회의 완전히 성장한 구성원이거나 그들의 행위에 대하여 책임을 질 수 있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책임을 지울 수 있는 자율적인 윤리적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라는 관점을 근거로 한다.

철학자 Alan R.White에 의하면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확실한 권리란 "주장될 수 있고, 요구되고, 옹호되고 인정되며 면제되거나 인도될 수 있는"일들을 뜻한다.

동물들은 그러한 행위들을 보증할 수 없기 때문에, White는 동물들은 개념상으로 윤리적 또는 법적권리를 소유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동물권리에 대한 이러한 반대의견이 가지는 문제는 권리를 가지고 있는 것이 명백한 다른 사람들의 윤리적 그리고 법적 권리를 역시 부인하게 된다는 점이다.

신생아들이나 어린 아이들 그리고 정신적으로 심하게 장애가 있는 사람들도 윤리적 그리고 법적인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들의 부모나 그들을 보살필 의무가 있는 사람들이 그들을 무시하거나 학대하는 것은 그들의 윤리적, 법적 권리를 침해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그들이 윤리적, 법적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들은 "윤리적 사회"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거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주체적인 존재들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권리를 이해하거나 주장하는 능력이나 속성은 이 용어가 도덕률 또는 법률에서 쓰이는 것과 같이 "권리"를 소유하는데 있어서 필수적인 것은 아니다.

권리를 주장하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권리 소유자들이 요구하는 "권리"의 개념은 올바른 언어선택의 관점에서도 많은 것을 결여하고 있다.

의심할 여지없이 권리의 개념은 서로 윤리적 또는 법적 권리를 이야기할 수 있는 성인사회 또는 자율적인 사람들 사이에서 발생한다.

그러나 권리의 개념은 또 다른 중요한 기능을 지니고 있다. 권리란 그것을 주장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만 지켜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권리는 거대한 "윤리적 공동사회"의 일원으로서 포함되지 못하여 당위성을 얻지 못하는 비참하고 연약하며 유린당하고 사는 사람들을 보호한다.

미국의 남북전쟁 전의 노예들이나 나치제국에서 유태인들이 윤리적 사회의 구성원으로부터 배척을 당하고 "윤리적, 법적권리"가 박탈되었던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들은 그들의 권리주장을 소리쳐 외칠 수 있었으나 그들의 주장은 그 사회에서 '소 귀에 경 읽기'였다. 그들의 윤리적 권리들이 확실하게 침해된 것이다.

자신들의 권리를 지적으로 충분히 이해하고 그들의 권리를 강력히 주장하는 능력이 크면 클수록, 그들에게 행해진 권리침해의 심각함을 더 이상 악화시키지 않는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렇지만 논쟁의 여지가 없는 권리의 중요성을 권리소유자가 자신의 권리주장을 이해하고 이익을 위하여, 그것을 목소리 높여 요구할 수 있는 능력으로 단순화시키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다.

이 능력은 개체에 따라 너무나 미미할 수 있기 때문에 소유하고 있는 권리의 필요한 구성요소가 되지 못할 수도 있다.

만일 권리개념의 역사를 살펴보면 그들의 권리를 용감하고 분명하게 주장한 사람들이 오직 주체적인 역할을 한 사람들만은 아니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우리는 그러한 주장을 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나 또는 이러한 사람들을 대신하여 그들의 권리를 요구하는 일을 떠맡은 사람들도 적지 않았음도 역시 발견할 수 있다.

우리들은 힘이 없거나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을 보호해줄 사람이나 도움을 구하는 사람들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권리"는 이것을 만들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지식과 언변 또는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서만 주장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2)동물권리에 대한 또 다른 반대의견은 동물의 권리를 확실히 불합리한 쪽으로 미루는 것이다.

만일 동물이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동물들은 다른 동물에 의하여 공격을 받지 않고 잡혀 먹지 않을 권리도 가지고 있다고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동물권리의 개념은 어떤 동물이 다른 동물에 대해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내포하지는 않는다. 만일 동물이 권리를 지녔다면 그들은 어떤 사람들에 대하여도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동물들은 다른 동물들이 자신의 권리를 인식하고 그 권리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다른 동물들에 대하여 어떤 식의 권리도 가질 수 없다.

권리소유자가 자신의 권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인식하지 못하는 상대에게 대하여는 권리를 가질 수 없다고 하는 것은 동물들에게는 진실일 수 없다.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조절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정신질환때문에 정신병원에 수용되어 있는 김씨가 다른 환자 이씨를 때린 불행한 상황을 상상해 보자.

김씨도 이씨가 권리가 무엇인지 알지 못함은 물론 권리에 대하여 생각할 능력도 없고, 누가 윤리적으로 또는 법적으로 이러한 일에 책임이 있는지 논쟁을 할 처지도 못된다.

매를 맞지 않았다고 해서 이씨의 권리를 침해했다고 김씨를 비난하는 것이 과연 어떠한 설득력이 있겠는가?

(이씨의 친척이 김씨를 마주보고 서서 "당신은 이씨의 권리를 침해한 놈"이라고 마구 비난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비난하고 있는 상대를 쳐다보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김씨는 자신의 행동을 전혀 통제할 수 없었고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옳고 그른 것인지를 이해할 수 없었거나, 올바르거나 잘못 된 기준에 자신의 행동을 맞출 능력이 없기 때문에 이씨를 때려서는 안되는 의무를 가지고 있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러한 이씨의 권리는 병원당국이 보호해 주어야 할 의무가 있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병원은 이씨에게 일어난 일에 대한 윤리적 비난을 받아야 하고 법적으로 소송을 당할 수도 있다.

병원은 어떤 환자가 다른 환자에 의하여 폭행 당하지 않도록 할 법적, 윤리적 의무가 있고 이러한 의무를 이해하고 이에 알맞은 조치를 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새를 잡아먹은 고양이를 새의 권리를 침해했다고 비난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김씨가 이씨의 권리를 침해한 것을 비난하는 것도 그 정도만큼 불합리하다고 볼 수 있다.

김씨와 이씨가 윤리적, 법적 권리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이와같이 권리를 침해받을 수 없는 사람들처럼 동물도 권리를 침해할 수 있는 사람들에 대하여 자신의 권리를 가질 수 있다.

(3)수의관련 문헌에서 종종 언급되는 동물권리에 대한 논쟁을 세세히 살펴보면, 결국 권리란 사람들에게만 적용되는 즉 "순수 인간 창조물"이라고 요약될 수 있다. 즉 달리 표현하면 이는 권리에는 오직 인간권리만이 존재한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사실 이런 주장은 동물권리에 대항하는 논리는 아니라는 해석도 내포하고 있다. 아마도 권리가 "인간"의 창조물이라는 말의 내용은 권리와 관련된 언어는 인간의 언어임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사실이기는 하나 권리에 관한 언어들이 오직 사람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듯이 고통에 관한 언어나 생리적 언어들도 인간언어의 일부일 뿐이고, 이 언어들이 인간에게 좀 더 정확하게 적용될 수 있다는 뜻이지, 그 이상은 아닌 것 같다.

아마도 권리가 인간의 창조물이라는 주장은 권리라는 단어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윤리적 권리를 준수하고 주장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니면, 생겨날 수 없다는 것을 뜻할 수도 있다.

이 역시 옳을 수 있으나, 권리라는 단어가 동물에게는 상황에 따라서 다르게 또는 부적절하게 적용이 된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동물도 고통과 여러 불쾌함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그러나 고통이라는 단어 경우 동물들이 할 수 없는 방법으로 인간은 서로 요구하고 의사소통을 하며 인간사회에 보다 뛰어나게 기능하고 적용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우리들이 사용하는 고통에 해당하는 대부분의 언어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그 고통을 완화하기 위하여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청하는 것임은 확실하다.

사람들은 고통을 느끼는 장소, 고통의 길이, 그 정도 그리고 자신이 직접 경험한 바에 의해서 그 고통에 대한 정확한 특성과 불쾌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용어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이러한 고통을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용어들의 의미가 동물들에게 보다 정확하게 적용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들은 아직도 동일한 언어의 일부를 동물들에게도 사용한다.

(4)마지막으로 권리라는 말은 고기를 먹는다던가 연구에 동물을 이용하는 것 같은 부도덕성을 함께 수용할 수 없는 윤리적 위치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동물에게 윤리적 또는 법적 권리를 부여할 수 없다고 이야기들을 한다.

동물권리에 대한 이러한 반대 역시 아래에서 자세히 설명될 이유 때문에 옳지 않다. 여기에서는 사람들에 의하여 여러 방법 (때로는 죽임을 당하기까지)으로는 이용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내포하는 윤리적 또는 법적 권리를 동물에게 부여하는 것은 가치가 없다고 주장한다.

동물이 어떤 윤리적 또는 법적권리를 사람에 대하여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이러한 권리들 속에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4.동물권리 대 동물권리운동 (Animal Right Movement)

동물권리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동물운동의 개념과 "동물권리운동"이라고 알려져 있는 것과를 주의해서 구분해야 한다. 이 둘 사이에 대한 혼란은 사실 동물이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믿고 있는 사람이 "권리"라는 용어 사용을 반대하게끔 만들기도 한다.

1)"동물권리운동"이란 무엇인가?

어떤 집단이나 개인을 동물권리운동의 참여자로 구분짓는 여부는 개인적인 견해에 따라 다르다.

예를 들어 실험동물의 사용에 반대하는 국제동물권리보호회 (International Society for Animal Rights)는 연구에 동물을 사용하는 것에 동의하는 모든 사람들에 대하여 "규제자 (regulationist)"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그와는 달리 실험동물의 유용성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하고 실험에 동물을 사용하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권리주장자 (rightist)" 또는 "생체해부반대자 (antivisectionist)"라고 부른다.

또한 사려깊은 대다수 사람들이 동물권리운동이라고 칭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논란이 있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있을 만큼 동물권리운동을 정의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인정한다고 해도, 적어도 다음 사항에 해당되는 모든 사람은 동물권리운동의 참여자 또는 심정적 동조자 (sympathizers)로 간주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1)대부분의 포유동물 (그리고 확실하게 인정되는 반려동물, 가축, 실험동물들)은 윤리적 권리 자체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어느정도는 사람의 윤리적 권리와 동일한 윤리적 권리를 가지고 있다.

(2)어떤 동물들은 많은 부분에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심적능력과 작용같은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최소한 부분적으로라도 이들은 권리를 가지고 있다.

(3)어느 사람이 다른 사람을 잡아먹거나 당사자의 동의도 없이 연구에 이용을 하거나 단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한다면, 인간권리가 침해를 받는 것과 똑같이 이러한 일이 대부분의 동물들에게 행해질 때 이는 그 동물들의 윤리적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다.

(4)어린아이들이나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이 법적 대리인을 통하여 법률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것과 똑같이 법은 동물들이 자신들을 대신하는 누군가에 의하여, 법적인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윤리적 법적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

이러한 정의들은 참여자난 관찰자가 어떻게 동물권리운동을 생각하고 있는가를 반영하고 그들의 체제내에서 일고 있는 이론적이며, 실제적인 중요한 논란들을 적절히 포함하고 있다.

동물권리운동 참여자들 중에서 이러한 정의에 해당되는 동물권리운동 단체들로는 『동물법률구조기금 (Animal Legal Defense Fund)』, 『동물해방전선 (the Animal Liberation Front)』, 『실험에서 동물의 고통을 종식시키기 위한 연대 (the Coalition to End Animal Suffering in Experiments)』, 『동물의 윤리적 대접을 위한 사람들 (People for the Ethical Treatment of Animals)』, 그리고 『동물권리를 위한 수의사연합회 (the Association of Veterinary for Animal Rights)』들이 있다.

물론 수의사들이 동물권리운동에 대하여 자신들의 관심을 어느 특정분야로만 제한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다른 사람들이나 조직들은 때때로 수의사들에 대하여 날카로운 비난을 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동물권리운동을 위하여 연대하기도 한다.

그러나 만일 이유와 범위에 관계없이 "동물권리운동"이라는 깃발 아래에서 현실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동물사용에 대항하기 위하여 모든 사람들이 하나로 뭉친다면 이는 자칫 진실을 왜곡하기 쉽고 되고, 이러한 도전에 대하여 적절하게 대응하기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5.동물권리운동의 세 가지 신화

1)동물권리와 동물복지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

어떤 동물권리운동 지도자들은 오직 동물권리운동만이 동물의 권리를 옹호할 자격이 있고, 동물을 식품 또는 옷감 그리고 운동경기나 연구에 이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동물 "복지"나 "인도적인 대접 (humanetreatment)" 또는 "동물보호 (animal pritection)"이라고만 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다수의 수의사들은 이것을 동물권리와 동물복지의 불일치를 뜻함으로 받아들인다.

예를 들어 Robert M.Miller는 "만일 우리들이 동물이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거나 자연상태의 생활을 할 수 있는 것과 같은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전제를 받아들인다면 사람을 위하여 동물을 이용하는 모든 유용한 일은 비도덕적인 것이 되기 때문에 그는 동물이 선천적인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개념에 대하여 반대한다."고 했다.

그러나 동물권리의 개념은 동물들이 가질 수 있는 윤리적 권리에 대하여 어떤 특별한 권리를 발생시키는 것은 아니다. 뿐만 아니라 동물권리를 옹호하는데 동물복지, 동물보호 또는 인도적인 대접과 같은 개념과 어떤 식의 불일치가 있는 것도 아니다.

어느 철학자가 언급했듯이 오늘날 권리들은 윤리적, 정치적, 그리고 법적 논란에 있어 주요한 쟁점이 되어있다.

비록 수의사들이 동물들은 제한적이지만 윤리적인 권리를 지니고 있다는 견해를 유지하기를 원한다 하더라도, 만일 동물권리운동이 수의사들이 권리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을 거부하게끔 몰아간다면, 수의사들은 윤리적, 정치적인 논쟁의 본류를 피할 수 있다.

동물권리운동가들은 많은 수의사들이 부적당한 개념과 사고방법의 수렁 속에 빠져있다고 현대사회가 확신하기를 원한다.

이는 1983년 미국수의사회 동물복지위원회 (AVMA Animal Welfare Committee)가 발표한 "미국수의사회는 '동물권리'라는 용어사용은 개인적인 철학적 가치관에 의하여 이루어져야 하고 그렇기 때문에 '동물권리'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기를 권고하며, 수의사들은 관심의 초점을 동물의 복지와 인도적인 관리에 맞추어주기를 권장한다."라는 내용이 이 주장이 명확하다는 것을 뒷받침한다고 할 수 있다.

동물복지와 동물권리 사이의 불일치를 인정하는 것은 동물권리운동의 진영에서 좀 더 유연한 입장을 유지하기를 사람들에게도 또한 위험하다.

만일 수의사가 어떤 동물은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유지하기를 원하고 만일 그가 동물권리를 전적으로 옹호하기 위하기 때문에, 그가 동물권리운동자들의 주장에 동의해야만 한다고 믿고 있다면, 그의 유일한 선택은 오직 동물권리운동에 참여하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동물들이 윤리적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믿고 있다는 것 때문에 단순히 그러한 견해를 수용해야만 하는 사람은 없지 않겠는가?

2)그러나 동물은 법적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

동물권리 운동가들에 의하면 만일 그 자신의 이름으로 소송을 할 수 있거나 법정에 의하여 그 대신 소송을 하고 금전적 손실을 회복하거나, 그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직접 구제할 수 있도록 지정된 사람을 가지고 있는 것을 법률가들은 "소송에서 자신이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할 수 있는 권리 (standing)"라고 부르는데 이것이 없다면 법적 권리를 가질 수 없다.

동물권리운동가들은 어린아이들과 정신적 장애 어른들은 법률이 그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그러한 권리를 가질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다는 점을 주시한다.

그러나 민사소송은 동물에게 같은 방법을 마련해 주지 못하며, 동물들의 금전적 회복이나 동물에게 해를 끼친 사람으로부터 다른 구제를 얻어낼 수가 없다.

동물권리운동가들에 의하면, 동물학대금지법조차도 동물들에게 어떠한 법적인 권리를 마련해주지 못하고 있다.

그러한 법률은 공공기관에 법을 집행할 수 있는 힘을 주기는 하나, 특별한 동물 또는 동물들의 이익을 신장하기 위한 대리인 또는 후견인을 지정하는 조치는 마련되어 있지 않다.

지금 동물들은 어떠한 법적권리도 가지고 있지 못하고 동물들의 권리소유에는 법적권리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동물권리운동을 위하여 중요하다. 동물권리운동은 윤리적 권유보다는 법이 규정하는 바에 따라, 사람들이 행동을 하도록 강제하는 법을 이용하는 방도를 찾고 있다.

동물권리운동가들은 우리 사회가 법적 권리와 마찬가지로, 기본적인 윤리적 권리도 법적으로 강제하려는 경향이 있음을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만일 법적권리가 법적으로 자신의 권리나 이익을 주장할 수 있는 권리를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이 입증되면 이는 사람들을 동물들이 기본적인 어떤 윤리적 권리를 가지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동물들은 법적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동물을 대신하여 소송을 제소하는 것과 같이 법에 의하여 보호를 받아야만 한다는 매우 타당성이 있는 주장으로 사람들을 움직여 나갈 수 있다.

사실, 미국의 법률체계는 법률에 의하여 강제되는 제소권리를 가지지 않은 소유자에게도 많은 권리를 제공하고 있다.

예를 들면 일반적으로 시민 개인이 아닌 정부 행정기관들만이 시민 대중에게 영향을 미치는 오염공해를 낮추도록 소송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법률가뿐만 아니라 법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시민은 그러한 공해에 의하여 어떠한 손상도 입지 않을 법적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것이다.

만일 그러한 침해로부터 구제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사실 범죄의 희생자나 소송대리인이 아니고 공익검사 (public prosecuters)를 제공해주는 사법체계일 뿐이고, 전형적으로 희생자에게 적절한 보상을 마련해주지 못할 뿐이라면, 누구도 우리들이 범죄로부터 자유로울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Joel Feinberg는 "동물들이 그들을 보호하기 위한 법률로부터 학대를 받지 않을 일반적인 법적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이유는 없다."고 밝혔다.

Feinberg는 만일 법이 어떤 사람들에게 그들의 이익을 법적으로 주장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면 그 존재는 법적권리를 가질 수 있다고 설명한다.

동물보호법령이 허약하고 동물을 위한 법적권리가 빈약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해도 Feinberg는 이것은 그렇게 되서는 안된다고 믿고 있다.

예를 들어 Feinberg는 영국의 동물학대금지법 (British Cruelty to Animals Act)은 "동물의 고통이 예상되는 어느 실험에서도 사용 전에 완전히 마취를 받을 권리를 부여하고 있으며, 실험용 쥐의 법적인 권리의 침해에 대하여는 법적인 기소를 할 수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법률가와 판사가 동물의 법적권리에 대하여 당당하게 공개적으로 언급을 한 역사는 오래되었다. 예를 들면 1897년 루이지애나 주 대법원은 다음과 같이 판결하였다.

[동물과 관랸된 학대금지법률은 동물들도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보호되어야 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일반법률에는 알려지지 않은 이론"에 근거한 것이다. 조련사가 보호하고 있는 말은 부모에 대한 어린 자녀의 입장처럼 조련사의 유사체와 같은 관계를 유지한다.]

그 다음해에 미시시피 주 대법원은 동물학대금지에 관한 법을 일반적인 견지에서 다음과 같이 반복하여 설명하고 있다.

[일반법은 가축의 권리는 전혀 인정하지 않으면서 그러한 재산에 대한 개인권리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동물학대에 대하여는 처벌을 하고 있다.

동물학대금지법률은 이러한 결함을 보완하며 옥수수를 밟을 때 황소에게 재갈을 물리지 말고 황소와 당나귀를 함께 밭을 가는데 쓰지 말며, 어린 새끼나 알과 함께 있는 새를 잡지 말고 새끼를 어미의 우유로 끓이지 말라고 가르치고 명령하는 것 같이 귀머거리 동물에게 매우 사려깊은 것으로서 신성한 법정신을 나타내는 것 등이다.

동등자의 권리와 감정을 무시하는 것은 정의롭지 못하고 관대하지 못한 것이며, 힘있는 자가 약자에게 교활하게 또는 무자비하게 손상을 가하거나 억압을 하는 것은 야비하고 비겁한 짓이다.]

현재 통용되고 있는 법률들이 동물들에게 어떤 법적권리를 이미 제공하고 있다고 법률가와 철학자들에 의하여 최근에 제시된 논거들은 많이 있다.

만일 많은 사람들이 확실히 하는 것과 같이 동물이 어떤 법적 권리를 가져야 한다고 믿는다고 해서, 이것이 동물들이 자신의 주인이나 자신을 진료하는 수의사 또는 자신에게 해를 끼친 다른 사람들에게 금전적 또는 다른 보상을 요구할 수 있는 법적 대리 소송권을 가져야만 한다는 동물권리운동가들의 요구를 인정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동물의 법적권리의 개념은 동물의 윤리적 권리 개념과 마찬가지로, 동물권리운동 단체들의 정강정책을 동반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3)동물권리운동은 수의사들에게 이롭다.

비록 동물보호운동가들은 수의분야를 비도덕적이라고 매우 비난하지만, 운동권의 일부 지도자들은 수의사들이 그들의 운동에 적극 참여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위에서 다룬 두 가지 신화와는 달리 동물권리운동이 수의학에 별로 큰 호응을 받고 있지 못하다.

그러나 이 논제는 이야기해 볼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 만일 동물권리운동가들이 수의관련 출판물이나 정보에 점차적으로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다면, 동물권리운동 참여자들은 그렇게 크게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일부 동물권리운동가들이 수의과대학 학생들에게 윤리를 가르치는데 주요 역할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다. 동물권리운동가들에 의하면, 인간의 목적을 위하여 수단으로서 동물을 사용하는 일은 부도덕한 일이다.

이대로라면 경마나 섬유나 낙농제품 또는 달걀을 얻기 위한 동물들의 상업적 사육은 중지되어야 한다. 운송이나 다른 작업에 동물을 이용하는 것도 중지되어야 하고 승마의 즐거움이나 전쟁을 위하여 말을 기르는 사람도 동물권리운동의 교훈을 범하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위에서 이야기한 상황으로 계속 진행된다는 것은 오늘날의 수의전문분야 - 식품, 섬유 그리고 실험동물 및 대다수의 말 관련 종사자를 포함하여 -에 매우 중요한 고려사항이 될 것이다.

더욱이 이들 분야의 몰락은 아마도 동물권리운동가들의 요구에서 이론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대부분의 수의사들에게는 불길한 징조일 수 있다.

수의분야는 대체로 농장이나 스포츠 또는 실험동물 종사자들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 의한 중요한 수단 내에서 뒷받침되는 경제적 기반에 의존하고 있다.

이러한 기반없이는 수의사를 양성하는 많은 수의과 대학이나 수의사들에게 그들이 필요로 하는 물건들과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제약회사나 공급회사들이 생존하기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러한 처지를 받아들인다면 심지어는 반려동물분야에서조차 동물권리운동을 오랫동안 계속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 사람들이 반려동물에게 하고 있는 많은 일들과 번식 그리고 대부분 사람들의 안락함과 편리함 그리고 즐거움을 위하여 마련되는 동물의 외부치장 (예, 애완견 미용)과 같이 수의분야의 수입을 창출하는 일들은 중지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일들의 대부분은 반려동물의 의사에 따른 것이라기 보다는 주인의 취향이나 욕구에 따른 경우이기 때문이다.

사실 동물권리운동이 인간이 반려동물을 지니는 것을 얼마나 지지하는지 조차도 명확하지가 않다.

훈련시키거나 집에 머무르게 하거나 또는 동반자로서나 보호받기 위하여 그들을 이용하는 것을 포함하여 사람들이 반려동물에게 하는 일의 많은 부분들 중 적어도 일부분은 사람들을 위한 목적으로 행해진다.

어떤 동물권리운동가들은 반려동물을 소지하고 있는 사람들의 수는 아주 많이 줄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반려동물 주인의 수를 줄인다는 것은 잠재적인 수의고객을 직접 줄이게 됨을 뜻한다.

또한 동물들에게 그들의 주인이나 수의사를 고발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은 비용이 많이 들고 골치 아픈 소송에 직면하게 되기 때문에 동물을 소유하거나 수의사의 서비스를 축주나 종사자에게 덜 매력적으로 만든다.

동물권리운동권의 또 다른 요구이기도 한 부당진료 소송에서 수의사에 대한 과도한 보상청구의 허용은 수의학적인 처치에 대한 의료수가를 증가시키고 수의사들의 시장을 감소시킬 수 있다.

물론 다른 동물의 이익을 위하여 시행되는 동물실험의 종료는 많은 새로운 동물약품들과 예방백신 그리고 기술들의 발전을 억제할 수 있다. 물론 이는 수의서비스의 잠재적인 성장을 감소시킬 수 있다.

동물실험에 의하여 통제될 수 있었던 단 한 종류의 새로운 질병이 대다수의 환축을 죽음으로 몰아갈 수도 있다. 사실 동물권리운동가들은 이론적으로 사람들은 이미 동물실험으로부터 얻어진 어떠한 약들이나 기술들을 동물들에게 사용하는 것을 중지해야만 한다는 견해를 인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이것 역시 동물의 권리를 침해해서 얻은 이익 정도밖에 유용성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반려동물의 수와 수의사의 수는 짧은 시간 내에 급격히 감소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일이 사업에 이득이 되거나 손실이 된다는 사실이 어떤 사실을 옳거나 그르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작동될 수 있는 직업 역시 드물다. 의심할 여지 없이 많은 동물권리운동가들은 자신들의 프로그램이 수의사들에게 이롭다고 확실히 믿고 있다.

그러나 동물권리운동가들이 동물들과 수의사에 대한 헌신을 주장할 때 환상 속에 사로잡혀 있게 되고 동물권리 프로그램은 동물과 수의사 양쪽 모두를 파괴할 수 있는 쪽으로 진행되게 된다.

6. 나가면서 : 변화가 필요하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1983년 미국수의사회 (AVMA)는 '동물권리'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 것을 권장하고 동물의 복지 인도적인 사용에 그들의 관심 초점을 모으고 격려하는 것을 공식적인 방침으로 채택하였다.

이 정책은 동물권리의 주장은 사람의 동물사용을 금지하게 만들런지도 모른다는 많은 수의사들의 견해를 반영한 것이다. 1990년에 미국수의사회는 동물권리에 대하여 새로운 정책을 결정하였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동물복지와 동물권리는 동의어가 아니다. 미국수의사회는 동물복지의 신장을 진심으로 동의하며 이를 공식적인 정책으로 채용한다.

그러니 미국수의사회는 사람과 동물 양쪽 모두에게 이익이 되도록 시행되는 연구와 음식, 섬유, 동반, 오락과 같이 사람 목적을 위한 책임 있는 동물사용과 조화가 되지 않을 경우 동물권리를 옹호하는 철학적 견해나 개인적인 가치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 새로운 정책은 중요한 변화를 나타내었다. 미국수의사회는 더 이상 "동물권리"라는 용어사용을 반대하지 않으나 오직 동물권리를 동물들을 인간들이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과 동일하게 생각하는 견해를 거부한다.

새로운 정책을 제정함에 있어 미국수의사회 동물복지위원회는 동물의 제한적인 권리측면에서 철학적인 논쟁을 이해하였다. 또한 위원회는 어떤 축주들은 자신의 동물들이 훌륭한 수의진료를 받을 권리가 있다고 믿는다는 보고를 위원회로부터 들었다.

사실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동물들은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믿고 있으며, 또한 의생물분야 연구를 포함한 폭 넓은 목적을 위하여 동물을 사용하는 것을 지지하고 있다고 한 연구조사의 결과는 밝히고 있다.

미국수의사회 정책의 변경은 현명했다. 철학자도 수의사도 사람들이 어떤 언어를 사용해야 하는지 강요할 수 없으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기를 원할 수 있다.

미국수의사회는 철학자나 사회구성원들 사이에서 동물권리에 관해 논쟁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민감하다. 동물권리를 비난하는 옛날의 낡은 정책을 고수하는 것은 수의직업에게 전적으로 불필요하고 궁극적으로는 황당한 전쟁에서 패배를 인정하게 된다.

동물권리가 매우 중요하고 사람에 의해 동물이 인도적으로 사용되어야 하는 것을 믿는 우리들은 동물권리의 개념이 동물사용금지의 배타적인 속성으로부터 따로 이용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우리들은 사실 동물들이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믿고 있으나, 권리라는 단어를 사용하기에 불편해 하는 수의사들이 참여기회를 잃어 버리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다.

"동물권리"라는 용어의 사용은 수의사들의 항의와 관계없이 앞으로도 더욱 확산되고 지속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의사가 짊어져야 할 앞으로의 과제는 책임있는 동물사용으로 동물권리의 일관성을 확실히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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