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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해방과 환경보호는 동지인가 아니면 적인가?/김진석교수
동보연 2009-06-15 11:23:17

동물해방과 환경보호는 동지인가 아니면 적인가?

/김진석(건국대)


1. 들어가며: 동물해방과 환경보호의 갈등

이야기 하나: 쿠와빈(Quabbin)은 보스톤시의 식수를 공급하는 미국 메사추세츠주의 큰 급수원이었다. 뿐만 아니라 자연경관이 아름답고 야생동물들의 풍족한 서식처이어서 그곳을 많은 사람들이 소중하게 생각했다.

사냥은 금지되었고 자연적인 포식자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 쿠와빈 관리위원회는 보호구역 내 사슴의 수를 줄여야함을 인식하게 된다. 어린 나무를 좋아하는 사슴의 왕성한 식욕은 급수원 주변의 산림 갱신을 어렵게 만들었고, 이로 인해 깨끗한 식수의 공급이 위협을 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린 나무 주변에 보호 통 설치하기, 전선으로 산림 주변 담장치기, 사슴에게 피임기구 삽입하기, 새롭고 큰 포식자 도입하기, 사슴을 포획하여 보호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옮기기 등이 대처법으로 거론되었지만 위원회는 비현실적이라는 이유로 이를 모두 거부하였다.

다른 지역으로 재배치하는 방법은 포획되거나 수송되는 도중에 발생할 수 있는 높은 치사율이 문제가 되었고 여우나 퓨마 같은 대형 포식동물들의 도입은 보존지역보다 더 넓은 서식 공간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결국 위원회는 사슴의 수를 줄이기 위하여 지역 사냥꾼들을 부르기로 결정하였다.

이후 동물해방 운동가들과 환경보호주의자들의 논쟁이 이어졌다. 동물해방 운동가들은 동물개체의 권리를 강조한 반면에 환경보호주의자들은 보호구역 전체에 대한 대안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두 진영은 견해 차이에도 불구하고 야생 자연의 보호를 위해 연대하였다. 인간의 간섭을 반대한다는 점에서는 서로 의견이 일치하였던 것이다.

쿠와빈 보호연맹(Quabbin Protective Alliance)의 동물해방론자들과 환경보호주의자들은 끝내 위원회의 결정을 뒤집지는 못하였다. 1991년 12월에 9일 동안 수렵허가를 받은 사냥꾼들이 쿠와빈에 서식하던 수백 마리의 사슴을 죽였다.

2년 뒤 캐나다 온타리오주 남서지역에 위치한 에리(Erie) 호수의 연안에 있는 로디우 주립공원(Rondeau Provincial Park)에 서식하고 있던 사슴들에게도 똑 같은 운명이 닥쳤다.

이 공원은 튜립, 사사프라스(sassafras), 그리고 검은 호두나무(black walnut)와 같이 캐나다에서는 보기 드문 수종들의 서식처였다. 이 “캐롤리나(Carolinian)” 산림은 다른 장소로 이동 중인 왕나비(monarch butterfly)의 휴식장소이기도 했다.

사슴들은 단풍나무와 너도밤나무보다는 어린 나무들을 먼저 먹어 치우는 바람에 시간이 가면서 산림의 상태가 급격히 변화하게 될 위협에 처하였다. 사슴을 포획하여 다른 곳으로 옮기는 작업은 별로 성공하지 못하였다.

온타리오주의 자연자원부가 훼손되는 산림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하여 결국 많은 수의 사슴을 죽이기로 결정했을 때 서로 다른 이유에서였지만 동물권리운동가, 농부, 원주민, 사냥꾼들까지도 연대하여 반대하였다

이야기 둘: 1977년 7월 10일, 영국 각 지역에서 약 일십만 명 정도의 시위자들이 사냥개를 이용한 여우사냥 금지를 제안하는 법률제정의 거부를 정부에 요청하기 위하여 런던의 하이드 공원(Hyde Park)으로 몰려들었다.

이 여우 사냥은 오랫동안 격렬한 반대를 불러 일으켰고 반대 단체들은 정기적으로 사냥 금지 운동을 실시하였다.

여우사냥 논쟁은 영국의 도시와 농촌을 찬성과 반대로 편을 갈랐다. 사냥에 반대하는 쪽은 사냥을 사라져야 할 잔인한 유물로 간주하였다.

그러나 지지하는 사람들은 사냥은 농장의 새끼 양이나 닭들을 위협하는 여우의 수를 효과적으로, 또 비교적 고통없이 줄일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주장하였다.

사실 이 논쟁은 런던에 모인 시위자들에게는 사냥 그 자체 보다 훨씬 더 심각한 문제였다.

그들에게 사냥은 시골의 모든 생활방식과 매우 밀접하게 관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1998년 3월과 2002년 9월에 있었던 대규모의 시위에서 수만 명의 시골 거주자들은 그들이 누리고 있는 자유와 전통적인 생활방식에 커다란 위협이 될 수 있는 여우사냥 금지에 반대하고 저항하기 위하여 런던으로 몰려왔다.

매번 여우 사냥 금지 법안은 가장 중요한 반대 운동 목표가 되었다(Taylor 2003).

많은 사람들은 동물해방운동이 넓은 의미에서 환경운동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동물은 인간의 물질적ㆍ사회적 환경 요소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야생동물은 인간이 중심이 된 자연 환경에서 조차 매우 중요한 구성 요소이다.

그러니까 두 운동 사이의 친밀한 관계는 분명하다. 동물해방운동은 환경보호운동과 비슷한 시기에 중요한 대중적 열정으로 등장하였고, 인간이 비인간세계를 다루는 방법에 대해 늘어나는 관심의 중요한 일부가 되었다.

그러나 철학적 수준에서 이러한 일들에 대한 논의는 그다지 정직하지 못하다.

일부 환경 전문가들은 동물해방주의와 관련된 주장이 그 초점을 생태계 복리에 두고 있는 환경윤리의 전체주의적 방향과는 근본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음을 지적한다.

심지어 해방주의자들은 자연과정을 무시하고 삶과 죽음의 현실을 직시하기 원하지 않는 감상주의자라는 비난을 듣는다(Lynge 1992).

환경보호철학자 캘리코트(Callicott 1989)는 환경윤리와 동물해방운동 사이에 “다루기 힘든 실제적인 차이점”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해방운동에서 실제로 추진하는 일들이 환경에게는 “파괴적인 결말”을 가져 올 수 있는 “생명혐오 철학(life-loathing philosophy)”이라고 동물해방론자들을 비난하였다.

이와는 달리, 리간(Tom Regan 1983)은 캘리코트의 주장을 “환경 파시즘 (environmental fascism)”이라 칭했다.

동물해방에 반대하는 환경보호주의자들의 입장은 그 본질을 간명하게 표현해 주는 '동물해방과 환경 윤리: 궁합이 맞지 않는 결혼, 성급한 이혼.(“Animal Liberation and Environmental Ethics: Bad Marriage, Quick Divorce”)'이라는 제목의 사고프(Mark Sagoff 1984)의 글에서 살펴볼 수 있다.

사고프는 공리주의와 권리의 측면에서 동물해방을 검토하고 양쪽 모두가 동물 종과 생태계 번성 추구를 목적으로 삼는 어떠한 환경윤리와도 조화될 수 없음을 밝혔다.

모든 동물 종들은 본능적으로 가능한 최대로 번식을 하고자 하기 때문에 그 생산량이 대단하다.

그렇기 때문에 야생에서 늙어 죽는 동물은 거의 없으며 대부분은 포식자나, 굶주림, 질병, 기생상태, 추위, 등등 때문에 제 수명을 다하지 못하고 도중에 죽고 만다.

그렇기 때문에 싱어(Peter Singer)처럼 공리주의적 입장을 가진 사람들은 동물의 그러한 불행을 줄여주기 위하여 인간이 야생 자연에 간섭해야 한다는 논리를 수용해야 한다고 사고프는 주장한다.

인간은 피임제가 섞인 먹이를 야생동물에게 먹여 태어나는 수를 줄이는 프로그램을 시작할 수 있고, 국립공원 같은 야생지역을 인도적으로 관리하는 농장으로 바꿀 수도 있고 굶주린 사슴을 애완동물로 입양할 수도 있다.

또 콩 단백질로 만든 모조 벌레를 새들의 먹이로 이용하여 땅속 벌레들을 구할 수도 있고 야생동물을 위해 피난처나 난방 우리를 만들어 겨울에 얼어 죽지 않도록 보호할 수도 있다.

위의 제안들이 환경보호론자들에게는 엉터리없는 것들로 비칠 것이다.

사고프의 지적은 동물해방에서 싱어와 같이 공리주의자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은 그러한 제안들을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환경보호론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동물권리입장은 좀 더 나은 대접을 받을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고 사고프는 단언한다.

동물 종이나 생태계와 같이 집단이 아니고 오직 개체만이 도덕적 권리를 가질 수 있다.

그러나 동물종과 생태계의 번성을 추구하는데 동물개체는 전략상 희생시킬 수 있는 소모품이 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환경윤리는 개별 동물들이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이와 비슷하게 노톤(Bryan Norton 1982)은 공리주의도 권리입장도 파괴로부터 생태계를 보호하는 윤리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고 믿었다.

야생동물의 고통을 최소화하는 것이 필연적으로 그들의 서식지 파괴를 막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노톤은 야생동물을 살리기 위하여 다른 장소로 옮기거나 파멸을 막기 위해 인위적인 불임 정책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노톤의 결론은 전체주의적 환경윤리는 개인의 이해관계 바탕 위에서 만들어 질 수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동물보호운동과 환경보호운동 사이의 갈등은 깊어가고 그 논쟁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과연 그들은 목적을 같이하는 동지인가 아니면 상종 못할 적인가?

2. 동물해방 개념의 등장과 그 의의

일반적으로 비인간동물(non-human animals)은 인간과 매우 다른 열등한 존재로 표현되거나 간주된다.

또 대부분의 인간은 동물이 이성, 또는 도덕적 주체성, 언어나 자각능력, 또는 의식과 같은 중요한 자질이 부족하기 때문에 도덕적 존재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1970년 이후부터 이러한 암묵적인 합의는 깨어지고 동물의 도덕적 존재 여부에 대한 철학자들의 격렬한 논쟁이 유행되면서 동물의 도덕적 지위에 대한, 또 인간이 동물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책과 논문들이 쏟아져 나왔다.

일부 철학자들의 동물에 대한 폭발적인 관심은 인간과 이 지구를 나누어 쓰고 있는 다른 생명체들에 대한 대우 및 환경문제에 대하여 급증하는 사회적 관심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도덕철학은 쉽게 대중의 관심을 끌거나 공적인 업무 과정에 즉각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분야는 아니다.

그러나 최근 수십 년 간 동물의 이해관계를 옹호해 온 동물보호운동은 철학자들 덕분에 더욱 주목을 받게 되었다.

따라서 이 논쟁에 가담한 철학자들은 동물보호운동의 “산파”로 불린다(Jasper and Nelkin 1992).

그렇다고 해서 동물해방운동이 일어난 것이 전적으로 철학자들의 노고는 아니다. 단지 그들은 자신들의 논쟁을 통하여 동물보호운동가들을 격려하고 그들에게 논리적 뒷받침을 해주었을 뿐이다.

“동물해방”(Animal Liberation)이라는 도발적인 용어는 호주 철학자인 피터 싱어(Peter Singer)가 최초로 사용하였다.

싱어는 1975년에 출간한 첫 저서의 제목으로 당시로서는 생소한 이 용어를 택했다. 싱어는 인종과 성 차별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동물 종을 바탕으로 한 차별 역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며 인간이든 비인간동물이든 모든 동물은 동등하다고 강조하였다(Singer, 1975).

그러나 그는 동물해방을 인간의 도덕적 감수성 진화의 필연적인 다음 단계로 파악함으로써 여성해방운동과 동물을 “해방시키는” 운동을 명확하게 구분하였다.

그러나 돼지에게 자동차 운전을 하도록 하고 발레 학급에 등록 시키는 것이 타당하지 않은 것처럼 인간을 대하는 방법과 똑 같이 동물을 대해야 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고 싱어는 주장한다.

그러나 동물의 이해관계가 인간 이해관계와 비슷할 경우, 동등한 배려를 받아야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별히 도덕적 견지에서 동물이 겪는 고통과 즐거움이 인간이 겪는 고통이나 쾌락의 크기보다 적은 것으로 간주되어서는 안 된다.

돼지에게 투표할 수 있는 권리를 주는 것은 납득될 수 없지만, 돼지가 겪는 고통의 크기는 인간이 겪는 같은 크기의 고통과 마찬가지로 꼭 같이 나쁜 것이다.

만일 감각능력이 있는 모든 동물에게도 고통은 역시 고통이며 인간이 겪는 고통이 일반적으로 피해야 할 중요한 것이라면 네 개의 다리나 꼬리를 가진 생명체가 겪는 고통이 인간이 겪는 고통과 무슨 차이점이 있겠는가?

어떤 생명체가 셈을 할 줄 알거나 바이올린을 켤 줄 알거나 철학 서적을 읽을 줄 안다는 것이 고통의 해로움에 과연 무슨 차이를 만든단 말인가?

비인간동물에 대한 정당하지 못한 차별을 싱어는 “종 차별(speciesism)”이라고 불렀다.

이 용어는 영국 심리학자이며 동물해방 활동가인 라이더 (Richard Ryder)에 의하여 1970년에 “인종차별(racisim)”과 “성차별(sexism)”의 동류어로 제안되었다.

인종차별이나 성차별과 마찬가지로 종차별은 다른 동물 종의 이해관계와 고통을 무시하고 자신이 속한 종에 대한 이기심을 바탕으로 한 일종의 편견이라고 라이더(1983)는 말한다.

정당하지 못한 차별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종차별 차원에서 동물을 취급하는 많은 방법들이 과연 정당한 것인지가 동물의 도덕적 지위 보다 더 심각한 논란거리이다.

예컨대 스피겔(Marjorie Spiegel 1996)은 인종차별과 인간의 동물 취급방법이 유사하다는데 전적으로 동의한다.

즉 사람들이 동물을 가족의 울타리로부터 강제로 떼어내어 우리에 가두고 그들을 부르는 용어와 그들을 예속시키는 것을 정당화하듯이 유럽인들은 아프리카인들을 비슷한 방법으로 노예화 시켰다는 것이다.

동물해방과 여성해방 또는 인종이나 다른 이유로 억압받는 인간들의 해방을 비교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주장을 모든 사람이 수용하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억압받는 인간들의 해방은 그들이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삶을 살 수 있고 삶에서 그들이 선택한 목표를 추구할 수 있는 권리를 인식하는 능력이 포함된다.

그렇다면 자신이 선택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동물을 해방시킨다는 것은 과연 합당한 일인가?

동물에게 불필요한 고통을 주어서는 안된다는 싱어의 주장이 자유로움에 대한 동물의 권리를 인정하거나, 동물 자신의 목표 추구를 방해하는 억압된 조건으로부터 동물을 해방시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 큰 논란이 있다.

동물해방을 옹호하는 일부 사람들은 동물도 자유로부터 기인하는 권리를 가져야 하며 그들 자신의 목표를 추구하기 위하여 억압된 조건에서 해방되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주장은 동물의 해방이 근본적으로 동물의 고통을 경감하는 문제라는 싱어의 전제에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

게다가 동물해방은 그들의 인식을 외부자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해방운동에서는 억압받는 무리의 구성원들은 자신의 불만과 요구를 명확하게 표현하고 스스로 조직하여 투쟁한다.

그렇다면 동물들은 과연 얼마나 이 같은 일을 할 수 있는가?

“동물해방”이라는 표현 자체가 논란거리가 되기도 한다. 심지어 동물보호를 지지하는 일부 사람들조차 “동물보호”(animal protection) 운동이나 “동물 방어”(animal defence) 운동, 또는 “동물옹호”(animal advocacy) 운동과 같은 다른 용어를 더 선호한다.

“동물권리”(animal right)라는 용어는 때때로 동물해방의 동의어로서 막연하게 사용되기는 하지만 모든 동물해방론자가 권리라는 개념에 초점을 두는 것이 특별히 유용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동물이 도덕적 권리를 소유하고 있음을 부인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이 용어의 적용은 더 큰 제약을 가지고 있다.

열성적인 동물해방옹호자에게 동물해방은 단순히 동물을 “인도적”으로 취급하거나 명백한 학대를 없애는 것 이상의 것을 의미한다.

비록 그들의 특별한 관점이나 그 관점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에서 서로 이견이 있지만, 동물이 인간 이용의 자원으로서 더 이상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에서는 의견을 같이 한다.

동물도 그들 자신의 삶을 가지고 있으며 인간이 노력하면 피할 수 있는 위해를 그들에게 가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변명의 여지가 없다(Clark, 1977).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동물의 기본적인 이해관계가 인간의 이해관계에 늘 종속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전문가들 사이에서뿐만 아니라 대중 사이에서도 격렬한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위험하고 심지어는 인간혐오적인 것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Marquardt 1993).

동물이 인간 이용을 위한 자원이라는 생각에 반대함으로써 연합을 이룬 철학적, 정치적, 그리고 문화적 활동의 폭 넓은 구성체인 동물해방운동은 동물이용에서 발생하는 고통의 최소화를 위하여 최선의 노력은 하나, 동물이 인간의 자원이라는 견해에는 원칙적으로 도전 하지 않는 전통적인 동물복지 운동과는 구분 된다(Francione 1996).

그러나 이 논문의 의도가 이러한 운동의 역사나 전술을 소개하는데 있지 않기 때문에 이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몽고메리(Charlotte Montgomery)의 피의 관계(Blood Relations)를 비롯한 여러 문헌에서 안내를 받을 수 있다(Guither 1998; Jasper and Nelkin 1992; Singer 1998; Tobias 1999).

이것은 동물이 과학 연구에 이용될 수 있는 것인지와 같은 중요한 논제로서 논란이 될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그러나 동물을 먹이로서 이용하는 일과 같이 매일 우리가 결정해야 하는 선택이 논제가 될 때 동물해방론자들은 일부 예외적인 상황을 제외하고는 일반적으로 육식은 도덕적으로 잘못이라는 점에 적극 동의한다.

동물해방은 동물-인간관계의 현재 구조 안에서 좀 더 나은 취급 정도를 요구하는 급진적 발상이 아니고, 오히려 이러한 관계의 근본적인 탈바꿈을 요구하는 개혁적 발상이다.

동물해방의 “동물”(animal)이라는 단어가 동물의 본성과 관계없이 모든 동물에게 해당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유의하여야 한다.

예를 들어 벌레의 해방을 옹호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동물해방을 지지하는 동물보호주의자들도 게나 달팽이가 해방 대상자로서 자격을 갖추었는지에 대하여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방의 개념이 자신에게 발생하는 일로 인해 영향을 받는 복지에 대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생명체에게만 해당된다는 점에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감각능력이 없는 생명체들은 이러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동물해방운동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Bernstein 1998; Rollin 1992).

엄격히 말해서, 감각적이라는 것은 감각수단에 의한 지각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뜻한다.

그러나 동물과 관련된 논란에서와 같이 이 용어는 전형적으로 통증과 즐거움을 겪을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특별히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유기체가 이해관계를 가진다는 것은 최소한 통증 또는 즐거움에 대한 감각적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지각력”(sentience)이라는 용어를 어떤 일을 자신에게 이롭거나 해로운 것으로 경험하는 능력을 나타내는 것으로 사용하는 것은 정당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고통(통증 감각 또는 감성적 불안)과 쾌락(또는 행복감)의 심적 상태가 감각적 입력의 직접적인 산물인지의 여부이다.

우리는 비록 통증이나 쾌락을 느끼는 감각적 능력은 없지만 자신의 목적이 성취 되는냐에 따라서 만족이나 절망 또는 기쁨이나 슬픔을 경험할 수 있는 존재를 상정할 수 있다.

그러나 염두에 두어야 할 요점은 만일 생명체가 자신에게 이롭거나 해가 될 수 있는 일들을 경험할 수 없다면, 그 개체는 자유로워 질 수 있는 생명체 부류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동물의 도덕적 지위에 대한 논쟁에서 심리적 기능과 관련된 질문들이 큰 역할을 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다른 형태의 동물은 어떠한 특성들을 가지고 있는가?

그 특성을 가지고 있는 동물을 다루는 적절한 방법은 무엇일까?

드그레지아(David DeGrazia 1996)는 '동물을 신중하게 다루기: 심적 생활과 도덕적 지위(Taking Animals Seriously: Mental Life and Moral Status)'라는 책에서 감각능력, 의식, 쾌락, 통증, 고통, 희망 그리고 신념 같은 타당한 개념들의 의미와 응용성을 검토하였다.

바너(Gary Varner 1998)의 책 자연의 이해관계(In Nature’s Interests)는 어떤 부류의 생명체들이 희망을 가지며, 소망에 의하여 규정되는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과학적 증거와 설명을 제시하고 있다.

3. 레오폴드의 대지 윤리와 리간의 동물권리

사고프가 환경윤리 측면에서 동물해방을 반대하면서 레오폴드(Aldo Leopold, 1887-1949)의 “대지 윤리”(Land Ethics)를 기준으로 삼았다면, 캘리코트는 레오폴드의 적극적인 해설자이자 옹호자가 되었다.

레오폴드는 인간이 자연환경을 정복하고 통제할 수 있는 단순한 경제자원의 하나로 간주하는 것을 중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신 땅, 물, 식물, 동물 [또는 집합적으로 대지] 같은 생물권 내의 다른 요소들과 마찬가지로 인간도 “생물 공동체”(biotic community)의 평범한 구성원이며 시민이라는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니까 그는 인간에게 제한되는 윤리적 지평은 인간도 한 부분으로 포함되는 생태계로 확장되어야한다는 것이다.

그의 환경윤리의 핵심사상, 즉 격률(maxim)은 이러하다. “생물공동체의 보전과 안정, 그리고 아름다움을 보존하려고 할 때 그 일은 옳은 것이다. 그렇지 않을 때는 잘못이다.”

레오폴드의 윤리는 전체주의적이다. 그것은 생태계 구성요소의 개별 복지 보다는 생태계 전체의 복지에 미치는 효과를 바탕으로 행동을 평가한다.

식물과 동물 개체들의 번성은 중요한 것이 아니며 중요한 것은 이러한 식물과 동물 개체들이 이루고 있는 전체의 번성, 다시 말해서, 종과 생태계의 번성이다.

레오폴드의 격률은 직관적인 호소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편협하고 개인적인 이해관계보다는 인간과 비인간의 삶이 함께 뿌리를 내리고 있는 더 큰 전체에 감사하고 그 전체를 돌보아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리간은 기존 구성원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 생물공동체의 건강과 번성을 강조한 대지윤리의 주장을 환경파시즘이라고 공격하며 이러한 윤리는 자신의 입장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환경 파시즘과 권리견해는 마치 물과 기름 같다: 그들은 서로 섞이지 못한다”(Regan 1983: 362쪽). 파시즘 신봉자의 믿음은 개체는 생물학적으로 바탕을 둔 공동체의 일원으로서만 가치가있다는 것이다.

캘리코트(1989)는 대지윤리 측면에서 인간도 생물공동체의 일원으로서만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웨이드(Maurice Wade 1990)는 이러한 형태의 환경윤리가 파시스트라는 공격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을지 의문을 가졌다.

그는 스포츠로서 인간이 인간을 사냥하는 것도 생물공동체의 복리를 증진시키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을지를 궁금해 한 것이다

레오폴드의 발언을 엄격하게 이해하다 보니 리간과 웨이드가 제기하는 주장들이 나오게 되었다는 것을 아는 한 레오폴드를 파시스트로 비난 할 수 없을 것이다.

비록 리간이 생물공동체의 보전과 안정 및 아름다움 측면에서 환경윤리와 그의 주장의 핵심인 삶의 주체(subject-of-a-life)의 기본권이 조화를 이룰 수 없다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권리적 견해나 동물해방의 어떤 견해가 과연 자연환경의 번성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 여부는 아직 의문으로 남아있다.

4. 캘리코트의 생태 중심 윤리

캘리코트(1989, 1993)는 환경윤리에 우호적인 입장에서 동물해방과 환경 윤리의 조화를 제안한다.

즉 그는 도덕은 우리의 친구들에 대한 자연적인 동정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흄(David Hume)의 이론과 인간은 오랫동안 동물-인간 공동체 내에서 존재해 왔다는 미쥐리(Mary Midgley 1983)의 논리를 이용하여 공동체에서 인간이 동물을 포함한 다른 생명체들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를 설명하였다.

인간이 지켜야 할 가장 큰 의무는 혈연관계의 구성원들에 대한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인간은 자신의 이웃에 대해서 가지고 있지 않은 어떤 의무를 혈연관계에게는 가지고 있다.

다음으로는 동료 시민보다는 이웃에, 또 낯선 이에게보다는 동료 시민에게, 동물에게보다는 인간에게 의무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일부 동물은 다른 동물에 비하여 인간과 특별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예컨대 애완동물은 대리가족 구성으로서 특별한 대접을 받고 있다. 반면에 농장 동물들은 생명 제공까지도 허용하는 일방적이고 암묵적인 사회적 계약에 묶여있는 신세이다.

캘리코트(1993, 1994)는 미국원주민들이 자연환경을 동물과 함께 조화롭게 이용하고 있는 전통적인 생활방식에서 큰 감명을 받고 실현 가능하다고 믿는 환경윤리를 내놓았다.

그는 레오폴드가 주장하는 전체주의적 대지윤리와 동물 개체를 똑같은 생명체로 존중하자는 주장 사이에 조화를 이루어 낼 수 있는 방법을 원주민의 생활태도에서 인식한 것이다.

전통적으로 원주민들은 우주는 영(spirit)으로 채워져 있으며 식물과 동물은 견해를 가지고 있다.

특히 캘리코트는 동물이 인간의 경제적 교환에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존재로 간주한 오지브웨이족(Ojibwa)6)의 문화에 주목하였다.

이누이(Inuit) 족 문화에서와 같이 오지브웨이족은 사냥된 동물을 바람직한 태도를 지닌 사냥꾼에 의하여 죽임을 당하는 것을 스스로 허용하는 지적 능력을 가진 존재로 여겼다.

그렇기 때문에 사냥꾼은 사냥한 동물의 몸을 헛되이 쓰지 말아야 하며, 스스로 희생한 그 동물이 다시 태어날 수 있도록 남은 동물의 뼈는 묻어 주어야만 한다.

캘리코트는 인간이 자연환경을 이용하면서 지켜야할 두 가지의 윤리를 제안하였다.

첫째, 레오폴드의 주장대로 인간의 환경 이용은 생물공동체의 다양성과 보전성 및 안전성과 아름다움을 촉진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인간은 식물과 동물 개체뿐만 아니라 바위와 강물도 존중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요컨대 인간은 사려 깊게 동물을 선택하여 신속하게 죽이며 낭비없이 이용하여야하며 이러한 과정에서 동물을 정중하게 대해야한다는 것이다.

동물권리 주장에 대한 반론으로 아메리카 원주민의 세계관을 이용한 캘리코트의 논리가 과연 성공했는지는 아직도 미지수이다.

전통적인 원주민 문화가 먹이나 의복을 얻기 위하여 동물을 죽이는 것을 용서한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원주민들은 동물을 단순히 인간의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서 취급되어서는 안되는 능동적 주체로 인정하였다.

만일 인간이 동물을 이용하려 한다면, 오직 동물의 승인 하에 그러한 일을 해야만 한다.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동물이 자신의 죽임을 허락하는지 여부가 견해의 중요한 차이점으로 남아 있기는 하지만 존중의 개념은 동물에 대한 원주민의 태도가 권리적 견해와 기본적으로 공통적인 그 무엇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전통적인 사냥꾼-채집인 사회에서, 음식이나 옷감을 마련하기 위한 동물 이용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원주민들이 동물에 대하여 보여준 존중은 비인간 자연에 대한 영적 태도를 반영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생존을 위하여 필수적인 동물 이용을 제한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선택이 없어 동물로부터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얻는 원주민 이외의 사람들에 의한 사냥 행위를 옹호하기 어렵다.

비록 캘리코트가 먹이를 얻기 위한 동물 사냥을 지지하고 또한 전통적인 사육방법으로 동물을 사육하는 것을 적극 변호한다 할지라도, 그는 공장식 농장(factory farm)은 반대한다.

이는 공장식 농장은 인간이 가축과 함께 가지고 있다고 믿고 있는 전통적인 계약을 깨는 것이고 환경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며, 전 세계 인구를 먹여 살리기에는 비효율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원칙적으로 원할때는 야생동물로부터 “존경스럽게” 얻은 고기로 부족함을 보충할 수 있는 채식주의자 식단의 이용을 적극 지지했다.

5. 공리주의적 동물해방과 환경윤리

환경 철학자들은 도덕적 관점이 너무 제한적이라는 점에서 해방론자들을 공격한다.

왜 감각능력이 있는 생명체에서 멈추느냐고 그들은 묻는다. 어떤 환경윤리는 의식능력을 지닌 생명체들뿐 만 아니라 자연세계의 모든 구성요소가 내재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음을 인정할 것을 요구한다.

감각능력을 잣대로 향상된 도덕적 지위를 제한된 일부 생명체에게만 적용하는 것은 부분을 지나치게 중요시 하고 전체 생존에 요구되는 것들을 전적으로 무시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캘리코트가 특히 동물해방 지지자들을 괴롭히는 것으로 발견한 것은 포식자로부터 먹이가 되는 동물을 보호하기 위하여 인간이 야생자연에 관여해야만 한다는 함축된 의미이다.

그러한 관여는 결국 생물공동체를 황폐하게 만들 것이라고 그는 주장한다.

사고프와 마찬가지로 캘리코트는 이러한 이유 때문에 공리주의적 주장과 권리적 견해 모두를 거부하였다.

표면적으로 환경론자들에게는 동물해방의 공리주의적 주장을 거부해야만 한다는 주장이 강하다.

공리주의는 고통을 줄여주기 위하여 불가피한 간섭으로 얻는 이익이 인간복지에 드는 비용을 뛰어넘는 한, 인간이 자연에 간섭하는 것을 받아들인다.

사고프의 제안 같은 것 이외에도, 공리주의자의 비용/이익 분석 결과가 많은 수의 포식 동물들을 제거(가능한 한 인도적으로)하는 쪽으로 기울 가능성이 있다.

만일 여우를 야생에서 제거하고 건강하고 잘 먹는 사슴과 순록들의 숫자도 피임약에 의하여 조절한다면 피할 수 있는 고통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자.

동물해방을 지지하는 공리주의자는 표준적인 의미에서 환경보호론자는 될 수 없을 것이다.

공리주의적 신념을 지닌 해방론자들은 다음 두 가지 이유에 바탕을 두고 야생동물의 생활에 인간이 간섭하는 것은 이로움 보다는 해로움을 더 많이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는 반응을 보인다.

첫째, 환경보호론자들이 불안을 느끼는 것과 마찬가지로 대규모의 간섭은 생태체계에 심각한 위해를 쉽게 가져와 결과적으로 인간에게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생명체에게나 아직까지 야생에 자유로이 남아있는 동물에게 피할 수 없는 피해를 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고통을 줄이기 위해 대규모로 자연에 간섭하려는 계획에는 즉시 의문을 가져야한다.

흔치 않은 제한된 간섭은 간혹 이로울 수도 있겠지만 인간사회의 필요성에 따라 자원을 멋대로 전환하는데 드는 비용과 쓸데없이 생태계에 참견하는 위험 역시 공리주의자를 괴롭힐 것이다.

인위적 간섭에 따른 불확실한 결과는 별개로 하더라도 서로 다른 동물 종에 대한 비용과 이익의 총합을 계산하려는 시도가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매우 어렵다는 것이 입증될 것이다(Gunn 1983).

둘째, 주의 깊게 마련된 인위적 생활 조건에서 야생동물이 자신의 삶을 보내는 것이 야생자연에서 보다 더 행복할 것이라는 주장은 정말 신뢰할 만한 것인가?

밀(Mill, 1957)에 따르면 행복은 질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어 “만족하는 돼지보다 불만족스런 인간이 더 낫고, 만족한 바보보다는 불만족한 소크라테스가 낫다.”

그렇다면 불만족한 야생 수퇘지가 만족한 돼지보다 낫고, 생존 투쟁을 위해 자신이 지닌 힘을 자연환경에서 충분히 발휘하고 있는 동물이 붙잡혀서 갇힌 상태에서 기획된 삶을 사는 동물보다 행복한 것이 된다.

분명히 동물은 자유의 가치를 음미해 보고 귀하게 여기는 인간의 이성적 능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렇기 때문에 동물이 안락한 감금 생활보다 어려움이 많은 야생 자연 상태를 더 좋아하게 하는 선별적인 조건은 없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야생동물은 진화의 산물이긴 하지만 특별한 자연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내재적 능력과 본능적인 욕구인 목적인(telos)을 스스로 지니고 있다.

공리주의자가 자연환경에서 야생동물을 옮기거나 그 환경의 급격한 변경이 동물이 진정으로 원하는 복지를 증진시킬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 생명체가 바라는 생활방식에 대해 얼마나 깊이 생각하느냐와 관계없이 자연환경에서 동물이 얻게 되는 만족감은 감금 상태에서 얻는 만족감 보다 훨씬 더 클 것이다.

그렇다면 설득력의 여부와는 별개로 첫 번째 모습과는 달리 동물권리와 환경윤리의 조화를 위해 공리주의적 바탕에서 화해가 이루어 질 수도 있을 것이다.

6. 동물권리와 환경윤리

동물해방의 권리주의적 견해는 환경윤리와의 조화를 이루는데 공리주의적 견해 보다는 더 바람직한 후보감이다.

권리주의적 견해는 인간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롭게 그들의 삶을 사는 동물의 능력에 대한 존중을 바탕 개념으로 하고 있다.

리간(1983)은 그의 권리주의적 주장은 다른 동물로부터 어떤 동물을 보호하기 위하여 야생자연에 인간의 간섭이 필요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히 하였다.

야생동물의 권리를 인정한다는 것은 그들에게 그들 자신의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스포츠 사냥이나 덫 사냥과 같은 직접적인 간섭 행위나 상업적 개발 같이 동물서식지를 파괴하는 간접적 형태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운, “그들을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두는(letting them be)”것을 의미한다고 그는 말한다.

주제에 대한 리간의 명확한 언급에도 불구하고, 캘리코트는 야생동물의 권리를 인정하는 것은 특별히, 삶에 대한 권리(the right to life)-포식자로부터 먹이 동물을 구하기 위하여 인간에게 환경적으로 파괴적인 시도를 허용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고 주장한다.

캘리코트는 삶에 대한 권리의 개념을 비도덕적 원인에 의해 죽어가는 상태에서도 구함을 받을 수 있는 권리도 포함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이러한 해석을 지지하면서, 캘리코트는 인간은 자신의 행동에 도덕적인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에 의한 공격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범죄적인 정신이상자의 공격으로부터도 다른 사람을 구해야함을 지적한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포식자 동물이 그들의 먹이동물에 대하여 도덕적으로 책임이 없다 해도, 인간이 동물의 권리를 인정한다 해서 이러한 위해를 방지하는 것조차 인간의 의무인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캘리코트는 리건이나 싱어식의 주장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포식자의 몰살을 가져오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캘리코트와 리간은 동물이 삶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에 대하여 서로 다른 해석을 하고 있다.

삶에 대한 권리는 자유에 대한 권리와 불필요한 고통을 받지 않아야할 권리와 마찬가지로, 일반적으로 (비록 항상은 아니지만) 도덕적 주체에 대한 불간섭 선언으로 단순히 이해된다.

즉 삶에 대한 권리는 자신의 의지에 반하여 도덕적 주체에 의하여 죽임을 당하지 않을 권리이다.

이것은 만일 어떤 생명체가 도덕적 주체에 의하여 죽임을 당할 위험에 처해 있다면 도움을 제공 받을 권리를 포함한다.

그렇기 때문에 삶에 대한 권리는 심장마비나 높은 나무에서 추락, 또는 배고픈 맹수 호랑이 공격과 같은 비도덕적 원인에 의하여 인간이 죽는 것을 방지해야 할 의무를 다른 인간이 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삶에 대한 권리가 심지어는 비도덕적 원인에 의하여 죽임을 당하는 것조차 다른 인간에 의하여 방지되어야 할 권리도 포함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리치(D.G. Ritchie, 1994)같이 야생동물에게 삶에 대한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 애초 극복할 수 없는 문제를 안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McCloskey 1979).

그러나 삶에 대한 권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명확하게 이해한다면 우려하는 문제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클락(Stephen Clark 1997)은 고양이로부터 쥐를 구하는 것에 대하여 리치의 귀류법(reduction ad absurdum)이 쉽게 결말을 낼 수 있을지를 궁금해 하였다.

만일 고통을 악으로 간주한다면, 단지 도덕적 주체에 의하여 기인된 것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인간이 이러한 악을 방지할 의무를 다하지 않아도 되느냐고 그는 묻는다

그리고 단지 야생동물의 고통을 방지하는 것이 어렵다는 이유 때문에, 고통을 방지하는 것이 쉬울 때조차 관여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도 묻는다.

만일 쥐가 삶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사실 위해로부터 구함을 받아야 된다는 명백한 선언일 수 있다. 그러나 명백한 권리는 모순될 수 있다고 클락은 주장한다.

고양이 역시 삶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러한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은 고양이가 그들 나름대로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살아가도록 해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야생동물의 권리는 자연스럽게 생존할 수 있는 권리이며, 자연스러운 생존은 일상적인 위험에 직면하는 것도 포함한다.

이것은 인간이 할 수 있을 때, 유별난 위험으로부터 동물을 구하기 위하여 인간이 가끔 간섭하는 것조차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클락의 분석으로부터 우리가 끌어낼 수 있는 결론은 결국 리치의 귀류법이 야생동물에 대한 권리 부여가 비인간 포식자들이나 비도덕적 원인들에 의한 위해로부터 동물을 구해야 하는 의무를 정상적인 상황에서도 인간에게 부과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리간과 켈리코트의 논쟁은 결국 삶에 대한 권리에 대한 서로 다른 이해에서 나오게 된 것인가?

권리주의적 견해가 야생동물과 그들의 서식지를 그대로 나두는 것을 요구 하는 것인 한, 야생 자연에 인간의 관여가 결코 용서되지 못한다는 입장이다.

인간 관리의 필요성은 야생동물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잘못에 대한 것이라고 리간은 주장한다.

대조적으로 대지윤리는 다양성과 보존성, 그리고 안전성과 아름다움 같은 가치 증진을 목적으로 인간이 동물을 포함한 생태계를 선의로 관리할 것을 권장한다.

예로써 캘리코트는 멸종위기의 식물을 보존하기 위하여 꼭 필요할 때는 동물의 사냥과 도태에 호의적이다.

캘리코트와 그리고 비슷한 의견을 가지고 있는 다른 사람들이 보여 주는 동물권리 입장에 대한 확고한 반대는 동물권리 주장이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 아니고 오히려 자연에 대한 인간의 간섭을 너무 허용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비록 많은 전문가들이 마땅히 주어야 할 것 보다 더 많은 것을 주고 있다고 믿기 때문에 동물에게까지 권리를 확대하는 것을 반대하지만, 사실은 비인간 세계를 계속 지배하고 조작하기를 원하는 인간의 교만 때문에 권리가 동물에게 폭 넓게 확대되는 것은 거절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리빙스톤(John Livingston 1984)에 의하면, 인간사회에서 문제가 되는 권리의 필요성은 힘의 구조적 불평등에 의하여 제기된다.

이러한 조건에서 권리는 집단의 이해관계에 대항하여 개인의 권익을 보호하는데 공헌한다.

그러므로 야생자연에서 권리의 개념은 의미가 없다.

야생동물 개체는 야생자연에 대항하여 보호를 받아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연 모두에게 권리를 확대하는 것은 지구 전체를 인간의 통제 아래로 끌어 들일 수 있게 한다.

이것은 자연이 인간의 간섭을 통한 조정이 필요로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자연은 어떠한 조정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리빙스톤은 오늘날 감각능력을 지닌 지구상의 모든 생명이 인간의 통제 아래 있다는 주장에 반대한다.

모든 야생생명체는 인간의 경제적 행위와 정치적 결정에 의하여 위해를 입을 수 있는, 상처 입기 쉬운 한 묶음으로 이미 인간 사회의 권력 관계 내에 존재하고 있다.

만일 이런 이유라면, 야생동물에게까지 권리를 확장하는 것을 억제하는 것이 이러한 생명체들을 필요한 보호도 없이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동물들이 자신들의 권리가 부족하기 때문에 인간의 이용에 대항하는 도덕적 권리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메시지를 일반 대중에게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 역시 사실이 아니다.

인간이 동물을 이용하고 있는 동안에도 그 동물에 대한 존중을 어떻게 보여 줄 것인가를 잘 설명하고자 노력하면 인간이 동물 생명을 낭비하거나 자연환경을 훼손하지 않는 한, 사냥과 육식을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고, 오히려 권장할 만한 일인 것이다.

그러나 이런 입장은 생명유지를 위하여 불가피할 때만 동물에게 해를 입히거나 죽일 수 있다고 주장하는 해방론자들에 의하여 거부된다.

동물해방론자들은 동물자신의 운명을 그들 자신이 추구하도록 인간은 야생동물들을 내버려 두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만일 인간이 간섭해야한다면, 동물이 타고난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이용할 수 있도록 환경 조건을 개선시키는 정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Taylor 1996).

역사적으로 개인의 도덕적 권리의 개념은 본질적으로 분리되어 있으며 자기중심적인 개인들 사이에 맺어진 계약이 바로 사회라는 견해에서 나타난 것이다. 생태 중심 환경 철학은 인간이든 아니든, 개체는 다른 존재들과의 뒤엉킨 관계, 그물망에 자리한 자연적 존재이며 그들의 번성을 위해 적절한 생태적 조건을 필요로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런 측면에서 인간이 동물을 다루는 태도가 부적절한 것으로 나타나는 것은 당연하다.

프리시(Rod Preece)와 챔버린(Lorna Chamberlain) (1993)은 큰 생태 공동체의 부분적 존재에 대해 늘어나는 깨달음은 인간을 서로 다른 두 가지 방향으로 이끌어 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개체의 이해관계 보다 생태계 전체의 복리에 우선권을 주게 되는 집단적 기준의 적용 필요성을 알고 있다.

동시에, 인간이 자신을 동물세계의 일원으로 인식하고 있어 비인간 동물과의 연대감을 느끼는 한, 인간은 개체정(individual justice)의 요구를 무시하기 어렵게 된다. 인간 스스로 진퇴양난의 꼭대기에 갇혀 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프리시와 챔버린은 빈번하게 발생하는 개인과 공동체의 충돌에 대한 균형 잡히고 이상적인 해결책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신, 그들은 모든 동물, 심지어는 감각능력이 없는 동물도 가지고 있는 가치가 때로는 개인적이고 때로는 공동체적이라는 점을 깨달을 것을 권고한다. 인간의 “중요하고도 자연적인 이해관계”를 보호하는 것 외에 어떤 것도 해를 입혀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주장이 모든 동물이 모든 형태에 대하여 같은 크기의 도덕적 책임이나 동등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프리시와 챔벌린은 도덕과 관련 있는 특성13)의 측면에서 동물 종 사이에는 본질적인 불평등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견해를 바탕으로 하면 다른 동물 종에 대한 공평한 배려에 서로 다른 취급이 포함되게 된다.

7. 생물공동체 경영에 대한 갈등

야생자연 스스로가 돌볼 수 있도록 가능한 한 많이 그들을 있는 그대로 나두어야 한다는 생각은 충분히 매력적인 것 같지만 조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님을 쉽게 알 수 있다. 야생자연이란 무엇인가?

지난 천 년간 인간은 때로는 교묘하게 때로는 심각한 방법으로 자연 환경을 변화시켜왔다. 인간이 거주하는 이 물리적 세상은 19세기에 막스(Karl Marx 1974)가 지적한 바와 같이 인간의 창조물이다.

사냥과 낚시 금지는 환경보호론자들 사이에서도 찬성과 반대에 대해 의견 통일을 보지 못하는 문제이다. 글머리에서 소개한 쿠와빈의 경우 일부 환경보호론자들이 야생 자연에 대해 일반적인 “불간섭주의”를 해방론자들과 함께 지지하였고 스포츠 사냥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생태계의 보전을 위해 계획된 사냥도 반대하였다. 쿠와빈관리위원회 결정에 뒤따른 대중적 논쟁에 대한 연구에서 디자드(Jan Dizard 1994)는 동물해방운동가와 환경보호론자 사이에 이루어진 연대에 주목하였다. 비록 해방론자들이 강조한 동물개체의 권리가 보호구역 전체에 대한 대안 요구에 비중을 둔 환경보호론자들과 긴장은 가져왔지만 양쪽 진영은 연합하여 야생자연에 대한 인간의 간섭을 강력하게 반대하였다.

디자드는 인간의 관여가 결국은 자연의 조화와 균형을 파괴하게 될 것으로 양쪽 진영이 단정했다고 주장한다. 동물해방론자들에게 야생동물의 기본적인 권리는 자유에 대한 권리이었고 그 권리는 있는 대로 나두는 것이었다고 그는 말한다. 위원회의 결정에 반대하는 운동연대에 환경보호론자들이 참여함으로 공정한 자연환경 관리인으로서 자격을 잃고 오히려 자연을 더 많이 착취하도록 압력을 가하는 집단이 되었다고 반대진영의 사냥꾼들은 주장 하였다.

그러나 바너(Gary Varner 1998)는 목표가 되는 생물종의 총합적인 복지 촉진을 위하고 생태계의 보전을 확보하려는 “치유적인”(therapeutic) 목적일 때는 동물해방주의자들도 사냥을 지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치료적 사냥은 동물의 수를 서식지의 수용능력 범위 내에서 유지하기 위해 이용되는 “정교한 도구”(precision tool)라고 그는 말한다.

유전공학적으로 처리된 바이러스와 같이 과학자들이 일시적인 불임 방법을 완벽하게 개발 할 때까지 적은 수를 죽임으로써 다른 많은 수의 동물들을 고통에서 구하는 것이 바람직하기 때문에 동물 해방론자들도 치유적 사냥을 거부할 어떠한 이유도 없다고 바너는 주장한다.

바너는 리간의 권리적 견해로 돌아가서 치유적 사냥의 강제적 시행에 있어 필요한 “최소유린의 원칙”(miniride principle)를 요구하였다. 리간의 최소 유린의 원칙에 따르면 어떤 개체의 권리를 부득이 유린해야 할 경우와 개체가 겪을 수 있는 고통이 비교가 될 수 있는 경우, 우리들은 가능한 한 적은 수의 개체의 권리를 유린하여야 만 한다는 주장이다.

만일 같은 동물 종의 정상적인 마리 수가 죽음에 의하여 동등하게 위해를 받고 있고, 동물의 수를 다른 방법 보다 치유적인 사냥에 의하여 그 숫자가 더 바람직하게 조절될 수 있으며, 좀 더 적은 수의 동물이 죽을 수 있고, 동물의 권리가 좀 더 존중될 수 있다면 그러한 사냥은 오히려 도덕적으로 강제되어야만 한다.

바너는 리간이 권리는 오직 도덕적 주체에 의해서만 침범 당할 수 있기 때문에 동물이 자연과의 마찰에 의하여 죽는 것을 권리의 침해로 볼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최소유린의 원칙은 적용될 수 없다고 비판할 것을 예측하였다. 비록 리간이 어떤 경우에도 사냥을 인정하지 않는다 해도, 바너는 만일 성숙한 동물권리 입장이라면 많은 수의 동물이 죽게 되는 미래 상황을 방지하는 유일한 수단인 경우에 치유적 사냥을 지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논제가 과연 동물에게 해가 되느냐 여부일 때 동물 해방론자들이 불간섭 정책을 지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해방론자들도 부상 입은 야생동물을 돕는 것이 인간의 의무인지 여부에 대하여 의견이 나뉜다. 공리주의자들은 생태계 전체의 이로움을 위해 인간의 시간과 자원을 이용하여 좀 더 위대한 선을 이루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주장하지만 대다수의 동물 권리 옹호자들은 불간섭의 의무를 강조 한다 그리고 부상한 야생동물을 돕는 것은 간섭에 의하여 침해 받을 권리가 전혀 없을 상황에서만 선택적으로 가능한 것으로 간주한다.

자연 서식지에서 다른 곳으로 동물을 완전히 이동 시키는 일은 문제가 없는가? 야생 동물을 동물원으로 옮겨 관리하는 것은 자연생활을 영위하는 자유를 그들로부터 빼앗는 것이 되기 때문에 잘못이라고 재미손(Dale Jamieson 2002)은 지적한다.

장수와 행복을 배려하는 것과는 별개로 자유로운 생활에 대한 배려가 앞서야 한다. 반대로 디그레지어(David DeGrazia 2002)는 포획(captivity)14)이 잘 살고 있는 동물의 능력을 필연적으로 심각하게 방해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야생동물을 동물원에 감금하는 것이 정당하려면 인간은 두 가지 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고 제안한다.

첫째, 동물의 기본적인 육체적, 심리적 필요성에 일치하여야 한다. 둘째, 동물은 적어도 야생에서 누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정도로 바람직한 생활이 그곳에 마련되어야 한다. 비록 대부분의 동물원들이 이러한 양쪽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으며 오직 적은 수의 동물원만이 이러한 조건들을 충족하고 있다. 물론 기본적인 필요 요건조차 갖추지 못하거나 못할 동물원은 문을 닫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8. 나가면서: 인간중심적 패러다임의 극복인간과 동물은 환경의 주요 구성요소이며 동물이 없는 인간 사회의 존속은 실재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인간이 바라보는 동물의 존재적
가치와 도덕적 지위는 회의적이다. 이런 바탕에서 인간을 중심으로 한 환경보호에 대한 이해가 동물해방 주장과 충돌함은 예정된 결론이다. 그러나 자기중심적이고 공격적인 이러한 충돌을 피하거나 완충해 줄 수 있는 새로운 모색은 없는 것일까?

우선 “생태적” 주장이라고 불리는 것을 인정하고 그것들을 감각능력이 있는 존재의 “사회적” 주장으로부터 구분하는 시도는 어떨까? 감각능력의 특별한 중요성은 다른 존재가 인간의 수준 정도로 경험할 수 있는 경우, 그것은 ‘네가 그들로부터 대접을 받고 싶은 것처럼 남을 대접하라’는 황금률을 이용해야한다.

미쥐리(1983)는 동물의 도덕적 취급에 관한 주장에서는 생물공동체의 복지가 감각능력이 있는 동물을 배타적으로 취급할 수 있다는 생각을 거부하며 동물해방과 생태계의 번성 사이에 본래적인 충돌이 없다고 주장한다.

동물들에게 서식지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인간의 생태학적 주장과 감각능력이 있는 존재들의 사회적인 주장은 충돌하기보다 오히려 자주 한 곳으로 의견이 모인다는 그녀의 주장에서 이기심을 극복한 인간의 선한 모습이 보인다.

벤톤(Ted Benton 1996)은 동물이 가지고 있을 수 있는 세 종류의 권리를 구분하여 인간이 존중할 것을 요구한다.

첫째, 불간섭의 권리(noninferference right)가 있다. 동물이 불간섭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인간에게 그들을 감금하지 않거나 그들이 선호하는 자율성을 익히는 행동을 방해하지 않을 책임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둘째, 가능성의 권리(enablement right)이다. 이 경우에 인간의 책임은 자율성을 익히면서 동물이 그들의 필요에 부합하고, 그들의 복지를 확보할 수 있도록 생활 조건을 마련하거나 보전해 주는 것이다. 셋째, 방어의 권리(security right)가 있다. 이는 인간에게 그들의 필요 충족이나 복지 확보를 확실히 해줄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동물해방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자연환경의 인위적 파괴에 깊은 관심을 가지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인간과 동물 양쪽의 복지는 인간 서식지의 확장과 종 다양성의 기술적인 감소에 의하여 위험한 한도까지 서로의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긴장 상태가 나타난다.

동물 존재는 이제는 더 이상 생존 경쟁에서 인간의 경쟁자가 아니라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동물의 복지는 대부분이 인간의 손에 달려 있기 때문에 동물을 대신해서 누군가가 동물의 입장을 주장하게 된다.

자연에 대한 관심은 가치 근원의 다양성의 견지에서도 적절히 표현될 수 있다. 생태학적 결정을 위한 어떠한 특별 지침이나 공식을 제시하지 않는다 해도 서로 다른 가치의 근원들 사이에 조화되지 않는 갈등이 없으며 설사 생태학적 충돌이 있다 해도 인간은 이를 통하여 발전적으로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여성주의적 돌봄의 견해 역시 부분적인 해결책을 제시한다. 생명력있는 환경윤리는 인간의 관계와 감성적 애착에서 시작된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인 돌봄의 관점에서의 인식(the care perspective recognition)과 개체의 도덕적 기준을 위한 정의적 관점에서의 접근(justice perspective’s approach)이 경합해야만 한다 (Rick O’Neil, 2000).

갈등의 경우 권리는 보통 돌봄의 배려 정도 보다 우선권을 가지지만, 여기에 명확한 규정은 없다. 여성주의자들이 강조하듯이 많은 경우가 상황과 특성에 따라 달라진다.

환경적인 돌봄을 위해 본래적인 가치를 보호하는 반면에 권리를 존중하는 방법을 찾도록 인간을 격려해야만 한다. “한 마리의 동물”처럼 순수하고 단순한 것은 없다(Anthony Weston, 1992).

많은 종류의 동물이 있고, 그 중에는 인간도 있으며 각자는 그 자신의 특징적인 자질을 가지고 있다. 비인간동물은 마치 그들이 불완전하거나 인간 보다 열등한 형태로 도덕적 평가를 받아서는 안된다.

인간의 심리적 복지는 동물생활의 다양성의 존재와 다른 동물들과의 진지한 관계에 달려있다. 인간의 “이기적”인 관심과 이 보다 훨씬 큰 자연 전체에 대한 관심 사이에 인간이 찾아 내야할 “어떤 식”의 조화가 분명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이 지구 위의 다른 형태의 생명체에 대한 본래적으로 진화론적인 역사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친화성을 가지고 있다 (Edward Wilson, 1984). 그렇기 때문에 복지에 대한 인간의 견해와 우리가 누구인가에 대한 인간의 견해가 우리 주변의 비인간생물체들의 복지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

인간으로 성숙하는 과정은 자신의 의식을 좀 더 넓게 발전시켜가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는 자신의 이해관계와 다른 사람의 이해관계를, 인간과 비인간, 생명체와 비생명체의 이해관계와 동일시하게 되는 것을 뜻 한다.

동일시를 확대해 나가는 이러한 과정이 전체적으로 자신과 다른 사람 사이의 구별을 없애거나 이해관계의 모든 갈등을 제거할 수 있는 중요한 과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인간동물에 대한 인간 중심적인 논쟁과 갈등은 인간의 관점을 넘어 선 거역할 수 없는 그 무엇에 대한 깊은 사고와 실천을 바탕으로 한 패러다임의 극적 전환을 요구한다. 동물해방과 환경보호는 호시탐탐 상대의 등을 노리는 숙명적인 적일 수 없기 때문이다.


김진석. 『동물의 권리와 복지』. 서울: 건국대학교 출판부.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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